매일신문

[이동수의 야구토크] 선동열과 김성근

순위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벤치의 지략싸움도 뜨거워지고 있다.

야구는 그라운드에 나선 10명(지명타자 포함)의 선수가 하는 단체경기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단체 경기의 특성상 한 곳이라도 공백이 생기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작전이 승부의 중요한 요소이다 보니 벤치가 차지하는 몫도 어느 종목보다 크다. 그래서 감독의 성격에 따라 팀 전체의 컬러가 형성된다.

올 시즌 1, 2위를 달리고 있는 SK와 삼성. 두 팀 감독은 팀을 상위권에 올려놓은 명장이지만, 야구 스타일은 매우 대조적이다.

SK 김성근 감독은 꼼꼼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경기 중 벤치에서 뭔가를 기록하고 있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종종 잡힌다. 김 감독은 매 순간 선수들의 컨디션과 상황별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한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 스타일을 들여다보자. SK에는 고정 타순이 없다. 선수들 훈련 스케줄부터 개개인의 컨디션까지 따진 뒤 선발 라인업을 짜기 때문이다. 오늘의 4번 타자가 내일 8번 타자가 될 수 있다. 상대 투수가 왼손이면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고 해도 선발이 보장되지 않는다. 더 잘 친 선수가 있다면 자리를 내줘야 한다. 특정 선수에게 강했던 선수가 만약 2군에 있다면 곧바로 1군에 등록해서 선발 출장시키는 게 김성근의 야구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작전을 구사하기 때문에 투수 교체도 잦다. SK전은 그래서 경기시간이 다른 팀보다 좀 길다. 필자가 경험한 김성근 감독은 개막전부터 마지막경기까지 전체 구상을 한 뒤 그날 경기 전에 또다시 1~9회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김 감독에게 어필하려면 훈련을 통해 미리 보여줘야 한다. 필자가 롯데에서 쌍방울로 드레이드 된 날 경기 후 호텔 옥상으로 호출됐다. 상견례 장소치고는 좀 특이하다싶어 올라갔다 3시간 동안 스윙연습을 하고 내려온 적이 있다. 감독이 직접 토스해주니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요즘도 선발 오더를 짤 때 5~10장 정도 분량의 선수 기록 카드를 보고 고민 끝에 제출할 만큼 철저한 계산속 야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기는 야구는 그의 철학이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다소 자유스럽게 팀을 운영한다. 승리를 목표로 겉멋을 부리지 않고 팀 전력을 구성하는 점은 비슷하지만 그의 '지키는 야구'는 김성근 식 야구와는 확연히 다르다. 가령 멧돼지 사냥에 김성근 감독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 반드시 잡겠다고 쫓아가는 식이라면 선동열 감독은 길목을 지키다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잡겠다는 스타일이다. 올 시즌엔 특히 '믿음'과 '경쟁'이라는 상반된 화두로 팀의 전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주전 선수에게 믿음을 주지만, 자극도 함께 줘 선수 스스로가 한 단계 실력을 끌어올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올 시즌 오정복, 김상수, 조영훈, 차우찬 등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 신·구간 조화를 일궈냈다. 8일 LG전에서 선 감독은 부진에 빠진 4번 타자 최형우를 8번 자리에 배치했다. 상대적으로 압박이 덜한 타순에서 타격감을 끌어올려보라는 배려였다. 이날 최형우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2개의 투런홈런을 치며 오랜만에 타격감을 회복했다. 배려였던 충격요법이었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삼성은 올 시즌 휴일인 월요일 거의 훈련을 하지 않았다. 선 감독은 '잘 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 4월, 삼성이 5연패에 빠졌을 때도 선 감독은 채찍보다 여유를 택했다. 아마 속이 시커멓게 탔겠지만 "시즌 초반이고 벌어 놓은 게 있으니 괜찮다" 며 호인의 기질을 발휘했다. 선수들의 자발적 훈련에 팀은 연패를 벗어났다.

현 시점에서 재미난 것은 1, 2위 SK와 삼성이 올 시즌 전적 9승9패로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정규시즌 우승 경쟁과 함께 어느 감독이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게 될지 결과가 궁금하다.

이동수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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