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모기장

나이가 들어갈수록 입과 마음에서 잘근잘근 씹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입이 허전할 때 씹는 껌의 자리를 내어 줘도 좋을 만큼 큰 위안을 주는 옛날 생각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내가 너희들 나이였을 적에는' 하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나는 추억에 젖어 기분 좋게 하는 말이지만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자제해 왔다. 그런데 아침부터 부녀 간에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자니 입이 간질거려 한마디 하고 말았다.

"나는 성년식 할 때까지 아버지 팔을 베고 잤는데."

다 커서까지 내가 아버지 팔을 베고 자게 된 것은 환경적인 요인이 컸다. 겨울에는 한옥의 추위 때문에 한방에 같이 잤고 여름에는 벌레 때문에 모기장 안에 모여 잤다. 몸부림이 심했던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자면서 겨울에는 추위를, 여름에는 모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것이 버릇이 되어 지금도 아버지와 스스럼없는 애정 표현을 한다.

모기장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자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지금처럼 에어컨이 없어도 밤새 시원하게 잘 수 있었다. 앞뒤 방문을 열면 맞바람이 쳤고 어쩌다 바람이 없는 날은 아버지가 부채질을 해 주면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날마다 똑같았지만 들을 때마다 신비로웠던 것은 파란 모기장 속의 네모난 공간이 동화 같은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방의 네 모서리에 묶인 모기장은 하늘하늘한 배를 축 늘어뜨렸고 나는 누운 채로 발을 올려 모기장의 배를 간질였다. 그렇게 장난을 치다 잠이 드는 날은 모기장 밖으로 한쪽 다리가 삐져나가거나 모기 몇 마리가 안으로 숨어 들어오게 된다. '찰싹 찰싹' 손바닥 소리에 눈을 뜨면 아버지가 모기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모기에게 물린 내 다리에 침을 발라주고는 밤새도록 다리를 쓱쓱 긁어 주었다.

지금은 보일러가 겨울을 책임지고 방충망과 에어컨이 여름의 임무를 다한다. 그러니 모여서 자는 일이나 모기장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모기장이 방충망보다 불편한 점은 많다. 그러나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모기장 안에 모여 한 번쯤 자 보는 것도 정서에 좋을 성싶다.

모기장이 네모 공간 안으로 사람들을 옹기종기 모은다면 방충망은 일자 모양으로 안과 밖을 구분 지어 사람들이 흩어져 생활하도록 한다. 전자는 좁은 공간에 정이 와글거리는 반면 후자는 넓은 공간에 덩달아 정이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아이들과 살을 비빌 일은 점점 줄어들고 살갑게 정을 내는 부모의 작은 피부접촉도 싫어하는 눈치다. 넓어진 공간이 사람 사이 인정의 거리를 조정하기보다는 이해의 폭을 조정했으면 좋으련만.

주인석(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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