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김호정 다래파크텍 대표이사

서문시장 동대구역 주차장 시공…지능형 주차시스템 분야 국내 최고

오랜만에 찾아간 옛 구로공단, 구로디지털단지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현장이었다. 굴뚝 공장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강남 테헤란로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첨단 빌딩들이 즐비했다. 김호정(54) 다래파크텍 대표이사의 인생도 그랬다. 고교 입시에 실패한 뒤 고향인 청도 금천면 오봉리에서 농사지으며 세월을 보내던 시골 소년이 국내 최고의 지능형 주차시스템 벤처기업 대표가 됐다. "공부는 꽤 잘했어요. 이왕이면 큰물로 가야겠다 싶어 경기고에 원서를 냈는데 막상 떨어지고 나니 공부가 싫어지더군요. 군대 가서 정신 차렸지요."

1982년 늦깎이로 대학에 진학, 4년 내내 장학생으로 다녔지만 나이 탓에 취업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뭘 해볼까 고민하던 때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너는 창업을 해봐라'는 조언과 함께 친구가 건넨 한 권의 책이었다. 산업용 열선(熱線)에 관한 영어 원서였다. "이공계 출신이 아니어서 이해는 힘들었지만 흥미로웠죠. 독일은 2차대전 때 이미 도로 결빙 방지를 위한 열선을 깔았다는데 우린 개념조차 없었거든요. 내친 김에 독일로 날아가 일주일 동안 매달려 수입권을 따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때마침 불어닥친 열선 시공 유행 덕에 사업은 금세 본 궤도에 올랐다. 전국 곳곳의 대형 빌딩 지하주차장 입구에는 어김없이 그의 열선이 깔렸다. 하지만 그는 또다른 '블루 오션'으로 눈을 돌렸다. 무선통신 중계시스템과 지능형 주차시스템이었다. "주차장 관련 사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업 아이디어들이 이어지더군요. 자동차문화의 발달과 무선통신의 대중화를 운 좋게 예측했던 셈이죠."

그가 주력하고 있는 지능형 주차시스템은 주차 예약·출입 관제·차량 유도·요금 징수 등이 모두 자동화·전산화된 미래형 주차문화로 평가받고 있다. 대구 서문시장, 동대구역 주차장과 서울 코엑스·김포공항·월드컵경기장 등에 이미 운영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중소기업 기술혁신 전국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았고, 관련 특허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알고 보면 저희 사업은 녹색산업입니다. 주차 효율화를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과 석유 사용량을 줄이거든요. 서울시와 '저탄소 녹색정보 안내시스템' 시범사업을 벌이고도 있지만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봅니다."

승리의 여신이 항상 미소를 보내준 건 아니었다. 외환위기 때는 아예 거리로 나앉을 뻔했다. "직원 6명이 집을 잡혀 돈을 마련해왔더군요. 같이 울었지요. 제가 사람을 아끼는 건 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창업자에게 자금과 제 노하우를 빌려주는 '앤젤 펀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전 6시에 출근, 1시간여 동안 그날 회의 내용에 대해 꼼꼼히 챙긴다는 김 대표는 젊은층에 대해 한마디 쓴소리도 했다. "중소기업에는 성장 기회가 훨씬 많습니다. 능력만 되면 바로 의사 결정에 참여시킵니다. 대기업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죠. 저희 회사에도 고졸 출신이지만 연봉이 7천만원이 넘는 직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땅히 쓸 만한 사람이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바둑과 등산이 취미인 김 대표는 청도 금천초교·대구중을 나온 뒤 상경, 건국대를 졸업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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