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무더위는 1934년 8월에도 어지간히 유난했던가 보다. 당시 일본에서 방학을 맞아 귀국한 이인성이 무더위를 피해 서울로 가 여름을 보냈다는데, 북한산 일대를 돌면서 그린 스케치와 쓴 글이 '향토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전 조선에서 이름 있는 대구의 더위에 못 견디어 팔월 초에 경성에를 왔다"고 밝히며 새로운 풍광에 직면하여 "더위도 고락도 잊고 콘티와 스케치북을 내어들고" 그림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그림 수업을 위해 일본에 가서도 벌써 몇 해째 해마다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다. 유학 첫해인 1932년 여름방학은 모교인 수창학교서 구한 소재로 '여름 어느 날'을 제작해 도쿄로 돌아간 그 해 가을 제3회 제전에 출품해 첫 입선을 했다.(당시 동아일보는 입선 소식과 함께 인터뷰 기사를 싣고 있다.) 이듬해인 33년 여름에는 '제전'을 비롯한 그간의 각종 공모전 수상작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위해 귀향했다가 전시회(7.14~19)를 마치고 월미도 여행을 한 기념사진을 남겼다. 또 다음 해인 34년에도 귀국해 그 여름을 서울서 지냈던 것이다. 그때 제작한 이 작품도 도쿄로 돌아가 이듬해 35년 초 제22회 일본 수채화전에 출품해서 최고상인 일본수채화협회상을 수상했다.
그가 그림의 주제보다 시각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감각을 좇는 화가라는 사실은 그의 짧은 글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위의 글에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적, 청의 지붕 빛이다"라든지 "또 이의 배경을 이룬 산들의 아름다움이여!"라고 경탄해마지 않는 대목이 그렇다. 이 무렵 제호 미상의 또 한 신문에 "향토를 그리다"라는 타이틀로 연재한 글에서 이런 생각이 더욱 확실히 뒷받침되는데 대략 그 요지는 이렇다.
"고대 그리스인은 세계를 코스모스 즉 미라고 불렀다. 만유의 구성 혹은 인간의 눈이 지니는 조형적 능력은 하늘이나 산, 수목, 동물과 같은 원시적인 물상이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일종의 희열을 주게끔 되어있다. 즉 윤곽, 색채, 운동, 집합에서 오는 일종의 쾌감일 것이다. 그러한 즐거움은 시각적 체험으로부터 비롯되는바 눈은 예술 중의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 김윤수는 "돈암동에서 정릉으로 넘어가는 아리랑 고개에서 돈암동 뒷산을 바라보며 그린 풍경"이라며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사물들을 통찰하여 윤곽, 색채, 운동, 집합을 보고 그것을 뛰어난 조형 능력으로 그렸다"고 평했다. 특히 "빛의 표현, 색채, 혹은 형태의 대비, 거침없는 터치가 그의 수채화로서는 드물게 견고하고 장중한 맛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1934년은 이인성의 예술이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다. 이 한 해에 제작된 대표적인 작품만 하더라도 '노란 옷을 입은 여인' '여름 실내에서'와 13회 조선미전의 특선작인 '가을 어느날' 등이 있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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