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49·여) 씨는 얼마 전 고3 수험생 딸의 수시 입시 컨설팅을 받기 위해 서울 사설학원에 들렀다.
이 씨는 딸의 학생부와 모의고사 성적, 각종 활동경력 자료를 보여주고 몇 개 대학의 전형을 소개받았다. 기본 컨설팅 비용이 50만원이었지만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가자 1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이 씨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도 전형이 각양각색인데 학교 선생님이 얼마나 상세히 알고 있을지 의문"이라며 "아이의 장래가 걸린 만큼 100만원이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구 고교들의 대입 수시 진학 성적이 초라하다. 상당수 고교에서 '수시 방관→정시 올인→재수생 양산'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학교와 교육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시피하고 있다.
◆수시 진학 지도가 없다
본지는 2010학년도 수능에서 전 과목 성적이 평균 4등급 이내에 들었던 대구의 중상위권 재수생 277명을 대상으로 수시 지원 실태(표2 참조)를 조사했다.
설문 결과 누구와 수시 상담을 했느냐는 질문에 학교 선생님이 49%를 차지해 선배·부모님, 인터넷, 학원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응답자 중 수성구 출신 재수생들은 담임과의 상담이 45%로 다른 구의 52%보다 낮아 대조를 보였다. 수시 상담 만족도도 저조했다. '매우 만족' '대체로 만족' 등 만족한다는 응답이 10%에 불과했고, '대체로 불만족'(25%), '매우 불만족'(14%) 등 불만족 응답이 더 많았다.
수시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논술 등 전반적인 수시 대비 부족'이 53%, '본인의 위치 파악 잘못'과 '수시 정보 부족'이 각각 20%로 나타났다. 특히 수시 준비 시기엔 91%가 '고3, 7월 이후부터'라고 응답해 지역 수험생들의 수시 준비가 미비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한 재수생은 "학교 선생님께 추천서를 써 달라고 했더니 '수업 때문에 바쁘니까 네가 알아서 써오라'고 해 황당했다"며 "이런 마당에 학교에서 충실한 수시 지도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한 입시 전문가는 "고3이 된 후에는 다양한 전형에 대한 검토를 못하는 상황에서 묻지마식 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성구 식(式) 정시 올인의 폐해
한 고3 진학 담당 교사는 "최근 대구 구·군별 1개 학교, 2개 학급을 대상으로 2010학년도 정시 대비 수시 합격자(4년제) 비율을 비교했더니, 서구 70%, 남구 50%, 동구 40%, 달서구 30%가량인 반면 수성구는 15% 정도로 나타났다"며 "표본 집단은 작지만 수성구의 수시 비중이 다른 구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수시 합격자 비율이 7,8%에 머무는 수성구 일부 고교의 논리는 이렇다.
"여름방학 때 수시 준비한다며 들떠있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정시까지 악영향을 준다. 수성구 학생들은 내신이 불리하기 때문에 정시에 치중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내신 불리 → 정시 올인'식의 진학지도는 큰 폐해를 낳고 있다. 한 고교 연구부장 교사는 "연세대는 70%, 고려대는 50%를 우선선발로 뽑는데 논술뿐 아니라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만족하는 게 더 중요하다. 최저학력기준을 하한선으로 삼아 통과한다면 적극적으로 수시에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6월 모의고사를 친 재수생이 8만 명이면 정시에선 14만 명이 넘는다. 상위권 재수생이 가세하면 재학생들은 연초의 백분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데, 무작정 정시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다"고 꼬집었다.
정시 올인의 이면에는 고교간 '서울대 스코어' 경쟁 탓도 있다. 수성구 고3 진학 담당 교사는 "정시에서 서울대에 합격할 만한 학생이 수시 상담을 오면 답답한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최근 대구 학력이 최하위를 기록 중인데다 학교 평가 도구로 입시 실적이 강조되면서 서울대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려는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손 놓고 있는 교육청과 학교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청과 진학 기구는 수시 전략의 부재를 학교 탓으로 돌리고, 학교는 학생들의 '높아진 눈' 만 탓하고 있다. 수시 진학에 대한 전형 정보와 전략이 태부족이다보니 최상위권을 제외한 대다수의 중위권 학생들은 수시 진학의 사각지대에 팽개쳐져 있다.
대구시 교육청은 교사들에 대한 직무 연수를 통해 진학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대입 수시와 관련한 변변한 데이터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진학진로박람회'를 개최(7월 말)했지만 이보다 시기가 더 앞당겨져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한 학부모는 "수시 상담의 내용을 들어보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예년의 수시 합격자를 분석해 합격 모델을 제시해주는 등 피부에 와닿는 기준을 제시해달라"고 강조했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수시 진학 상담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에는 진학진로 박람회를 5월중에 개최하고, 박람회장에 투입하는 상담 교사 인력도 늘릴 계획"이라며 "특히 내년부터는 고3 담임을 맡기 전인 1, 2월 중에 교사 직무 연수를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 입시 관계자는 "현재 고1이 수능 시험을 보는 2013학년도부터 본고사형 논술고사가 본격화되고 입학사정관까지 확대된다. 최소한 고2 2학기부터 자신의 위치와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지원 대학군을 정해놓고 구체적인 대비를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교육청과 학교가 체계적인 수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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