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대구 남구 대명5동 주택가 2층. 한낮인데 'Let it be' 'Hey Jude' 'Obladi Oblada' 등 비틀스의 명곡들이 흘러나왔다.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하모니카가 비틀스를 만나 잔잔하면서도 은은한 선율을 뿜어냈다.
살짝 연습실 문을 열었다. 같은 옷을 차려입은 50, 60대 아주머니들이 모양과 크기가 다른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있었다.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간씩 하모니카를 연주하는'멜로스 하모니카 앙상블'(이하 멜로스) 회원 8명이 연습을 마치고 잠깐 숨을 돌렸다.
표국화(61) 회장은 "각자 다른 곳에서 하모니카를 배우다가 의기투합해 '하사모'(하모니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만들었죠. 그러다가 기왕 할 것이면 소외받는 이들에게 음률을 선사해보자는 취지에서 정식 앙상블을 구성하게 됐다"고 했다.
2007년 3월 창단됐지만 회원들은 모두 10년이 넘는 하모니카 연주경력을 가진 베테랑들로 구성돼 있다. 창단 후엔 음악적 성숙을 꾀해보려고 전문음악인 윤춘식(47·대구시립합창단원) 씨를 단장으로 영입했다.
윤 단장은 "회원들의 역량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앙상블은 남을 배려해야 좋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합주 기량의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멜로스 회원들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은 가요, 팝송, 동요부터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수백여 곡이 넘는다. 연습은 주로 곡의 특징에 맞는 주법과 합주능력 배양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회원 개인별로 소유하고 있는 하모니카의 수는 평균 25종. 흔히 보편적인 하모니카인 트레뮬러부터 클래식과 재즈음악 전용 하모니카 크로메틱, 카우보이들이 즐겨 연주했던 휴대용 라이터만 한 하모니카 다이토닉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아마추어이면서 아마추어의 음악적 한계를 넘으려는 열성으로 똘똘 뭉친 멜로스 회원들은 음악봉사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영남대의료원에서 매월 한 차례 정기연주를 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초청연주회도 갖는다. 또 대구백화점 신년 직원 하례회에 고정출연하고 있고, 연말 월드비전 초청 연주회 등 이들이 연중 봉사하는 연주활동은 50여 회가 넘는다. 이 중 영남대 의료원에서 여는 매월 마지막 금요일 로비연주회는 고정 팬까지 확보하고 있다.
김인숙(54) 회원은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재미도 있고 봉사활동을 가려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긴 해도 끝나고 올 때면 너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김 씨는 멜로스 활동 이외에도 노인대학과 복지관 등서 하모니카 강사로 활동한다.
지역 복지관에서 하모니카를 가르치는 유명희(55) 회원은 "하모니카가 악기로서 음악적 한계도 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보다 큰 무대에 설 기회도 있을 것 같다"며 연중 1회 정도 자체 연주회 계획도 밝혔다.
석의숙(60) 회원은 "집에서 연습할 때 이웃주민들이 듣기 좋다고 할 때가 제일 기분좋다"며 "8명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며 젊은 시절 추억과 향수를 되짚어볼 수 있다는 것이 하모니카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멜로스 회원들은 "앙상블이 '함께, 동시에'라는 뜻이 발전해 '조화, 통일'의 의미로까지 확장된 말이듯이 스스로 멜로디를 즐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음률을 통해 새로운 감동을 주는 삶의 울타리를 쌓아가고 싶다"며 하모니카를 다시 입에 물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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