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택(30·대구시 남구 봉덕동) 씨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하루 세 끼를 챙겨 먹을 힘도, 돈도 없고 이를 챙겨줄 가족도 없다. '선천성 척추 분리증'을 앓고 있는 경택 씨에게 끼니를 거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똑바로 걷는 일이다. 아직 서른밖에 되지 않았지만 허리가 아픈 경택 씨는 하루종일 누워 지낸다.
최근 두 달 만에 몸무게가 20㎏ 넘게 빠지면서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까지 의심받고 있지만 치료비가 없어 검사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내일'이 두려운 사람
경택 씨가 24시간 누워 지내는 곳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처럼 보였다. 싱크대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였고 냉장고에는 물이 가득 차 있는 김치 통 하나와 빈 물병 두 개뿐이었다.
경택 씨가 하루 식사를 해결하는 시간은 매일 오후 9시. 먹지 않고 최대한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이때까지이기 때문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식사를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법도 터득했다. 하루에 세 번씩 나눠 몸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은 그에게 사치다. 한 달 수입이 기초생활수급비 19만9천원이 전부인 그는 2천500원짜리 쇠고기 국밥을 먹고 하루를 마감한다. 경택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밥이 2천원이었는데 500원이 올랐다"고 힘들어했다. 그는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살았다. 그런 그에게 '내일'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건 사치일 뿐이다.
◆혼자인 게 익숙한 사람
"이제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졌다"고 경택 씨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경택 씨가 6살 때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가 그를 떠났다.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후 어머니를 기억 속에서 지웠다. 15살이 되던 해에 경택 씨는 완전히 혼자가 됐다. 아버지마저 당시 중학생이었던 자신을 버리고 갑자기 사라졌다. 15년 전 아버지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
경택 씨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살아야만 했다. 집이 싫어 뛰쳐나온 요즘의 가출 청소년들과 사정이 달랐다. 이웃사촌들의 관심과 손길도 없었기에 세상에 버려진 15살 소년은 스스로 먹고 자고, 입을 것을 마련해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한 달에 7만원짜리 쪽방을 얻어 줄곧 그곳에서 지냈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학교를 마치고 마트에서 짐을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해 방세를 내고 입에 간신히 풀칠을 했어요. 먹고사는 게 먼저니까, 공부를 제대로 할 겨를도 없었죠."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경택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집과 프랜차이즈 분식점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6년 동안 악착같이 일한 덕분에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였다. 지난 2006년 그가 일했던 분식점 사장으로부터 "광주에서 직접 가게를 차려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경택 씨는 동업자를 소개받아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에 가게를 차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대구에서도 장사가 곧잘 됐던 분식점이어서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고 말했다.
저축한 4천만원과 은행에서 3천만원을 대출받아 가게를 차렸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광주에서 1천원에서 4천원짜리 떡볶이와 김밥을 파는 저가 분식점을 찾는 손님은 대구처럼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동업자가 사채를 끌어들여 투자하는 바람에 가게마저 넘어갔고 경택 씨는 빈털터리가 돼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다시 일하고 싶어요."
그는 사업에 실패했지만 낙심하지 않았다. 젊음을 밑천으로 바닥을 치고 일어나려 했다. 공장에서 선반 깎기, 중국집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지난 3월부터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왔다. 움직일 힘이 없어 공장에서 선반 깎는 일도 그만뒀다. 80㎏이 넘는 몸무게가 2개월 만에 60㎏도 안 나가는 약골이 됐다. 몸이 고장 났다는 신호였다. 지난 4월 동산의료원을 찾아가자 "선천성 척추 분리증인데 몸무게가 갑자기 이렇게 줄어든 것으로 봐 다발성 골수종이 의심된다. 앞으로 몸이 힘든 일은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배운 게 없어 몸으로 때워야 하는 경택 씨에게 일할 수 없다는 말은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모아둔 돈이 없어 조직검사는커녕 수술을 할 수도 없었다. 검사를 받고 정확한 병명이 나오면 정부에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 그것마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경택 씨는 지난 6월에 꼬박 15일을 굶었다. 물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렇게 누워만 지내는데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육체마저 자신을 버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경택 씨는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 젊고, 더 살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문 입구에는 깨끗한 흰색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경택 씨는 "고등학교 친구가 선물이라고 두고 간 건데 아직 신어보지도 못했다"며 운동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흰 운동화가 검게 변할 때까지 다시 일하고 싶다는 그의 절박함이 눈빛에서 묻어났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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