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은 서민들의 생활 터전이다. 걸쭉한 호객 소리와 물건값 흥정에 시끌벅적한 분위기, 삶의 애환이 녹아든 구릿빛 얼굴의 상인들, 말만 잘하면 슬쩍 덤 하나 올려주는 소박한 인정은 단조로운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전통시장은 사고파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역사회의 생활문화공간이며 소통의 광장으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선거 때면 전통시장을 찾아가 민심을 읽는다.
하지만 현대식 유통 업태 등장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전통시장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5년 전 기자가 유통 분야 취재를 담당할 당시에도 정부는 '재래(전통)시장 활성화 대책'을 추진할 정도로 전통시장은 고객 이탈과 매출 감소로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비교하면 외부 환경이 훨씬 좋았다. 대구에는 백화점이 4곳밖에 없었고, 서울의 대형 백화점과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은 진출하기 전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역외 대형 유통업체의 잇따른 진출은 전통시장은 물론 동네 구멍가게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는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과 영세 자영업자의 몰락을 초래해 지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와 국회, 지자체들은 대형 유통업체 진출을 억제하는 제도 마련에 나섰다.
'시장 논리'로 본다면 전통시장은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 우리 사회를 '야수의 얼굴'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공정한 사회'는 다양한 경제 주체와 사회 구성원들이 상생(相生)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며, 전통시장 살리기도 이런 측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겠다.
일본에서는 백화점, 쇼핑몰, 대형마트, 양판점 등 다양한 업태가 발전했지만, 전통시장들도 제 몫을 하고 있다. 도쿄나 교토의 전통시장은 신선식품과 지역 특화상품 등 차별화로 현대식 유통업체와 경쟁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상당수 국가들은 대형마트의 신선식품 취급 비중을 15% 미만으로 규제하고 휴일 영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전통시장 이용을 유도하고 있다.
전통시장 살리기는 대형 유통업에 대한 규제와 전통시장 지원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오래전부터 아케이드 설치, 주차장 확보, 고객 편의 시설 개선 등에 힘써왔지만,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려놓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개선해야 할 점들이 더 있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영업 시간 연장, 택배 시스템, 온라인 판매, 공동물류센터, 푸드코트, 놀이방 등의 시스템과 시설 보강, 그리고 고객 만족 교육과 마케팅 기법 개발 등이 시급하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 효율적 쇼핑(좀 비싸다고 해도 편익을 우선시하는 소비)을 하는 소비자들을 전통시장에 가게 할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장담을 못할 것이다. 이 때문에 전통시장 살리기 사업의 효과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부분이 지적되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중소기업청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9년까지 8년간 전통시장 살리기에 투입한 예산은 1조 1천6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5년간 경쟁력 취약 시장은 오히려 17.4%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예산 집행의 효율성 여부를 따져야 하겠지만, 지원 사업만으로는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돌려놓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전통시장 살리기를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고, 상인들은 서비스 개선과 새로운 판매 기법과 친절로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전통시장 장보기는 지역경제 살리기'란 생각으로 전통시장을 애용해야 한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지자체와 기업들이 명절이면 전통시장 장보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명절 반짝 이벤트로 끝내기는 아쉽다. 대구의 기업과 기관'단체 등이 역내 33개 전통시장과 자매결연을 하고 전통시장 장보기 행사를 지속적으로 가지면 어떨까? 전통시장에 희망을, 상인들에게 웃음을 돌려주자.
김교영(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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