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10월이 오면

고향집 고구마 캐러 친구들과 수학여행 가는 기분으로…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문익권(대구 달서구 유천동)

다음 주 글감은 '가을 여행'입니다

♥ 초가 위 흰 박꽃은 소금 뿌려놓은 듯

나의 유년시절, 고향에 10월이 되면 들국화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저 멀리 허수아비가 서있는 논에서는 탐스럽게 잘 익은 벼들이 황금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투명한 가을햇살 아래 알싸한 흙냄새가 물씬 나는 마당에는 고추가 멍석 가득 널려 있고 옥양목같이 깨끗한 가을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비슬산에는 짙어 불타듯 물든 황홀한 빛깔의 고운 단풍에서 진주홍물이 주룩주룩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또 밤이면 밤하늘의 푸른 보석 같은 수많은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고 둥근 박이 열려 있는 초가지붕 위로 무섭도록 눈부신 흰 박꽃과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달빛만이 우리 집 대추나무 사이로 폭포처럼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내 눈앞에 선한 명주실같이 흩날리는 억새풀 사이로 지던 장엄한 저녁노을과 자유롭게 맴을 도는 수천 마리의 잠자리 떼. 대낮 어디선가 우는 낮 닭소리와 싸리 울타리 너머로 빨간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석류, 노란 탱자 열매가 밝은 희망처럼 익어갔던 추억의 고향. 은하수 바라보며 별을 세고 논둑엔 따오기 슬피 울던, 그토록 아름다웠던 고향은 이미 오래전에 산업의 발달과 공해로 안타깝게 훼손되어 이젠 그때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운 신화와 같았던 고향이 내 마음이 시리도록 그리운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모습에 대한 아쉬움인 것 같습니다.

김명수(대구 달성군 현풍면)

♥ "아버지 묘소가서 어리광 부려야지"(사진)

내 고향은 영덕군 오촌이다. 딸들 시집보낼 때 장롱을 짜주려고 오동나무를 많이 키워서 붙은 이름이란다. 힘세고 신명 많고 노래 잘하고 일 잘하는 농촌 총각 아버지에게 시집온 엄마가 다섯 자식 훌륭하게 키워 내며 고향을 지켜온 지 어느새 반백년이 훌쩍 넘었다.

2년 전에 엄마 칠순 잔치를 했다. 우리 모두 엄마에게 노래를 한 곡씩 불러 드렸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차례였다. 목청이 좋아 온 동네 인기를 독차지했던 아버지는 건강 악화로 쉰 목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속상해하시던 아버지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넉 달 뒤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당시 나는 아버지 병세의 심각성을 전혀 몰랐다. 당시에 부모님의 소원은 내가 박사학위를 받으면 마을 잔치를 여는 것이었다. 과학고에서 영어교사 노릇 하는 것만으로도 바빠 헉헉대던 내게 아버지의 채근은 큰 부담이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힘없는 목소리로 언제 학위를 받느냐고 물었다. 나는 다음 해 봄 학기까지는 받을 거라고 둘러댔다. 아버지는 뜬금없이 그때까지 살아 있어 볼게라고 하셨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는 미안하다며, 도저히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겠다고 하시고는 얼마 후에 정말 숨을 거두셨다. 아버지의 관 위로 한 줌의 흙을 올릴 때 쓰디쓴 눈물이 났다. 힘들어도 좀 더 노력했으면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렸을 텐데….

절치부심하며 꼬박 1년을 매달렸다. 형제들이 모두 격려해주었다. 퇴근하고 밤새워 논문을 써나갔다. 너무 피곤해서 병원에 입원도 했었다. 마침내 나는 올 8월에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정원에 근무하면서 일본에 어학 연수를 간 남동생이 10월 초에 돌아온다. 어머니는 시월에 우리 둘을 위해 마을 잔치를 열겠다고 하신다. 아버지 묘소에 절하러 가서 장한 딸이 이제야 왔노라고 어리광 부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권경희(대구 수성구 황금1동)

♥ "고구마 다 썩어빠진데이…"

10월이 오면 단풍같이 알록달록한 추억이 있어 행복하다. 담장 너머 여고에서 들려오는 괴성마저도 좋아서 침 흘렸던 시절, 항상 옷차림이 껄렁한 친구가 토요일 오후 미팅 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이 왔다. 미팅을 마다할 내가 아니었기에 흔쾌히 대답하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시골에서 어머니가 고구마 캐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친구랑 두 명이서 자취를 하고 있어 반찬이 없으니 꼭 가긴 가야 하는데 일생일대에 획을 그을 수 있는 사업(?)이 있어 어찌 시골행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으랴! "엄마, 이번 토요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못 가겠고 다음 주 가서 고구마 캘게, 응?" "다음 주 서리 내리면 우짤라꼬? 고구마 다 썩어 빠진데이…." 고구마가 다 썩어도 어쩔 수 없었다.

머리에 무스를 발라 자존심을 세우고 미팅 장소에 갔다. 남학생들이 가진 물건 하나씩 내면 여학생들이 선택을 하는데 그 중 가장 예쁜 여학생이 나의 물건을 덥석 잡았다. 나의 소원이 적중했다. 여섯 명이서 놀다 보니 귀가시간을 놓쳐버렸고 모두 나의 자취방으로 몰려가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며 금세 친해졌다. 다음날 아침 엄마의 명령이 무서워 벌건 눈으로 고구마 캐러 가야겠다고 하자 모두들 교복을 입은 채로 따라 나섰다. 덜커덩거리는 버스 안에서 수학여행 가는 기분으로 노래를 부르며 도착한 나의 고향, 땅을 파고 고구마 줄기를 당겨 올리니 줄줄이 붉은 고구마들이 매달려 올라오는데 도회지 아이들에겐 잊을 수 없는 농촌체험이 되었다.

그 덕분에 여섯 명은 아직도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하나 둘씩 사위, 며느리를 본다는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는데 10월이 오면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 나의 고향이 그립다며 옛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김병욱(대구 북구 태전동)

♥ '잊혀진 계절'엔 꼭 생각나는 그녀

10월이 오면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생각난다. 10월의 마지막쯤 썰렁한 벤치 아래로 낙엽은 뒹구는데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그녀가 이별할 때라고 말했다. "넌, 참 좋은 사람이야. 잘 살 거야" 차라리 내가 밉다고 말 할 것이지! 오만상 좋은 말만 해주고 그녀는 떠났다. 좋은 사람을 두고 그녀는 나쁜 남자를 만나려고 떠난 것일까?

그녀가 나를 잊었고 나는 '잊혀진 남자'가 되었던 그 계절이 내게는 잊혀진 계절이다. 나는 그녀의 말처럼 내가 진짜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살았다. 우린 서로 다른 길을 가더라도 20년 후 10월에 그때 그 자리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연락을 해서 꼭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2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는데, 나는 더 좋은 남자가 되어 여기 이렇게 있는데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그 자리에 빌딩이 들어서고 더 넓은 길이 생기고 썩은 벤치가 없어서 되돌아갔나? 아니면 나쁜 남자를 만나서 애면글면 사느라 못 오는 것인가?

아니야, 재미나게 살면서 세월 가는 줄도 모를 거야! 아직 20년이 안 된 줄 알 거야!

행여나 그녀가 와 있을까! 자동차로 몇 바퀴 돌면서 생각해본다. 그때 그녀가 해 준 덕담 덕분에 내가 이렇게 복을 누리고 살아가는구나!

비록 그녀에게서 잊혀진 남자가 되었을지언정 "넌, 참 좋은 사람이야. 잘 살 거야" 고 해준 그 말에 감사함을 느낀다.

양일용(대구 달서구 용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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