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제외한 지방에서 인쇄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은 대구다. 이는 6·25 전쟁으로 서울에서 많은 인쇄업자들이 인쇄 기자재를 갖고 대구로 피란해 생업에 종사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눌러앉아 인쇄업을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다. 또 인쇄관련 업종의 분업화가 잘 이뤄져 있고, 차별화된 기술력과 품질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대구의 인쇄업체로 지역에서는 물론 전국 인쇄시장에서 리딩기업으로 성장한 업체를 소개한다.
36년째 대구에서 상업용 광고인쇄물을 제작하면서 일괄 생산으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인쇄업체가 있다. 이 업체 대표는 실무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25년 동안 대학 인쇄 관련 학과에 출강해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한다.
대구 중구 동인동의 새한정밀인쇄(회장 홍영상)가 주인공이다. 이 회사는 수출포장 인쇄물을 시작해 지금은 백화점 광고전단지와 라벨, 팸플릿, 책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업인쇄물을 제작하는 기업으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상업인쇄물 시장의 리딩 기업
새한정밀인쇄 홍영상 회장(70)은 세관공무원 출신으로 1974년 창업했다. 그는 창업에 앞서 재무국 세관국(현재 관세청), 부산세관 등에서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수출을 육성하던 시절 부산항을 통해 사과를 외국으로 수출했다. 당시만 해도 사과 궤짝에 등겨를 넣어 사과를 수출했던 시절이라 외국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 일본은 포장 상자에 낱개로 사과를 포장해 수출을 했기 때문에 한국 사과는 경쟁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수출 포장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 30대 초반에 공무원 생활을 접고 인쇄소를 차렸다. 대구 삼덕동에서 독일기계 1대를 들여와 남선알미늄, 조광산업 등 수출회사의 포장용 상자 인쇄를 주문받아 일을 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대구·동아 백화점에서 매주 세일 등의 행사를 알리는 광고전단지를 대량 인쇄하기 시작해 안정적인 성장을 했다. 이 같은 광고전단지 인쇄물은 보통 시간당 3만∼4만 부씩 대량 인쇄를 해야 하고, 보통 단면 인쇄가 아닌 양면 인쇄를 해야 했기 때문에 90년대 초반부터 상업윤전기 등 최신식 설비에 대한 과감한 시설 투자를 했다.
홍 회장은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지역의 양대 백화점과 청구, 우방, 보성을 비롯한 주택회사 등을 포함한 대구 상업인쇄물의 절반 이상을 우리가 수주했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 회사는 2008년 대구시로부터 업력 30년 이상 종업원 30명 이상 기업에 주어지는 30/30 기업으로 지정됐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한정밀인쇄는 IMF 여파로 대구의 청구, 우방, 보성 등 빅3 주택회사들이 발행한 어음을 인쇄비로 받았다가 연쇄부도가 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홍 회장은 인쇄업계에서 오랜 업력을 통해 쌓아온 명성을 생각해 부도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 노력을 했다. 당시 살 방법을 대구교차로 등 가두 무료 생활정보지에서 찾았다. IMF의 영향으로 회사를 잃은 사람들이 많아 구인과 구직, 전세나 월세 구하기 등 생활정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생활정보지 1일 발행면수가 60∼80면 하던 것이 280면까지 늘어났다.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거액을 들여 1992년 경산 진량공단에 인쇄공장을 건립했다. 새 윤전기를 도입하는 등 투자도 계속했다.
최근에 아파트 미분양이 많아지면서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자 인쇄물량이 줄었다. 그는 얇은 종이인쇄 시장이 갈수록 위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새한정밀인쇄는 식품회사의 식품이나 공산품을 담는 용기 등을 인쇄해 가공까지 하는 등 포장인쇄물 시장의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경쟁력의 비결은
홍 회장은 오랜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다. 인쇄공정에 필요한 디자인 관련 전문인력들과 인쇄, 제판, 코팅, 제본 등을 전문업소에 맡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일괄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 성장 비결이라고 한다.
그는 1979년부터 2005년까지 대구대와 대구권 전문대학에서 인쇄학과 제판학 등을 강의했다. 그는 강의를 계기로 인쇄업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고 사업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수천 명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경험과 기술들을 전수했다. 제자들 중 우수한 인력들을 직접 채용하거나 다른 회사에 추천해 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회사는 물론 타 회사의 현장 인쇄기술자들인 기장들에게 직접 또는 대구경북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인쇄하는 사람들'을 통해 인쇄이론과 실무교육을 실시해 대구 인쇄 기술력과 품질경쟁력을 길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색에다 UV코팅이 가능한 인쇄기, 인쇄물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는 로봇 스택커 등 30여 대의 최신설비를 과감하게 도입한 것도 주효했다.
홍 회장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쇄물의 수요가 줄고 있다. 또한 인쇄업도 3D업종으로 인식해 대학 관련학과 지원자들과 취업을 하려고 하는 젊은이들도 줄고 있다"면서 "하지만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인쇄출판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홍 회장은 지난해 제25회 인쇄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인쇄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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