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세금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바꾼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 시민뿐만 아니라 속주민까지 힘들게 했던 많은 종류의 세금을 다섯 가지로 줄이는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팍스 로마나를 열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세금 종류가 너무 많다. 국세와 지방세를 합해 우리처럼 30개의 세금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국민들 대부분은 도무지 어떤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 자동차를 사고 내는 세금의 수가 7개가 될 정도이니 세금 계산 자체를 포기해 버리곤 한다.

이렇게 세금 종류가 많아지게 된 것은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목적세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세와 농특세 같은 목적세는 다른 세금 위에 덧붙여 받는 부가세(surtax)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서 세제의 복잡성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우리의 조세 체계는 반드시 단순 명료하게 정비되어야 한다. 동일한 과세 대상에 부과되는 다양한 세금 종류들을 한 가지로 통합하고 국세와 지방세 간의 역할을 재정비하여 납세자들이 알기 쉽고 세금 내기에 편리한 조세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부담하는 것은 세금만이 아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의 보험료와 폐기물 부담금을 포함하는 각종 부담금과 같은 준조세도 모두 부담이 되는 것이다. 각종 규제 또한 경제 주체가 느끼는 중요한 부담이다. 그래서 세금, 준조세 그리고 규제를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자들이나 기업들은 상황에 따라 세금보다는 사회보험료를 줄여주기를 더 바랄 수도 있다. 한편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보다는 규제를 과감하게 줄여줄 것을 바라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세금만을 보는 근시안은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 7월 8일 발표된 대한상공회의소의 '기업 부담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4대 보험의 '기업 부담지수'가 '130', 법인세는 '123'으로 나타나 기준치인 100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더구나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더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업종별로는 비제조업이 제조업보다, 지역별로는 비수도권이 수도권보다 높게 나타났다. 경제 주체로서 근로자와 기업의 규모별로, 유형별로 세금과 준조세, 나아가 규제로 인해 얼마나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파악하여 이를 세제 개편과 규제 개혁에 반영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세금 가짓수가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지만 세금을 너무 자주 바꾸는 것도 문제다. 우리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세제 개편을 하면서 개편 항목 수도 늘 50개가 넘는다. 시행령까지 포함하면 무려 400개가 매년 개정된다. 과거에 세금 제도를 바꾸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볼 겨를도 없이 바꾸고 또 바꾸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의 경우, 세제 개편을 할 때 적어도 5년 이상 검토 과정을 거친다. 미국은 레이거노믹스의 기초가 되었던 1986년 세제 개편을 하기까지 오랜 기간 검토했고 또 세제 개편을 단행한 후에도 이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자주 바꾸는 세금이라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면 그나마 괜찮다. 그런데 우리 세금은 일관성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어렵게 원칙을 세워도 지키지를 못한다. 각종 비과세감면을 축소해서 세원을 넓히겠다는 기본 원칙은 이미 오래전부터 설정되어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새로운 비과세감면 조항은 계속 생겨난다. 특히, 의원입법을 통해 시도되는 비과세감면 세법 개정안이 지나치게 많다. 신설 감면 제도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한 해에 20여 개에 달할 정도이다.

법인세율의 인하와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를 묶어서 추진하자는 중장기적 계획도 지켜내지 못한 채 별개의 개편으로 다루고 있다. 올해 들어 일자리가 강조되면서 법인세율 인하는 미룬 채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없애고 대신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단기적인 시각 하에서 임시방편적으로 이루어진 세제 개편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힘들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세금 수와 세제 개편 빈도 수를 줄여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원칙을 갖고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추진해야 한다. 국가재정법에 의해 5년 단위 국가재정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듯이, 세금 또한 5년 내지 10년 앞을 내다보면서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통일과 같은 미래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중장기 세제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세제 개혁이 팍스 로마나를 이루었듯이 우리도 세금으로 세계중심국가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

안종범(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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