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사람이 같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 하지 않습니까? 빈손으로 시작해 이만큼 왔고 일어섰기 때문에 농업(꽃)에 대해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뭐든 해드리고 싶습니다."
제대로 배울 수는 없었지만 타고난 부지런함과 끈질기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로 구미시 지산동 지산들에서 '격래농장'을 경영하는 조격래(66)대표는 '공부하는 농꾼'으로 불릴 정도로 배우며 연구하고 기록하는 농업인.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박사 농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1970년 선산에서 지산동으로 온 그는 남의 땅에서 처음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시작한 그의 농업인생은 1972년부터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20권이 넘는 두툼한 두께의 빛바래고 낡아빠진 영농일지 노트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이 40년 농사인생은 1992년 기준으로 크게 수박 농사일과 화훼 농사일로 구분된다. 먼저 수박농사를 시작했다. 1982년엔 시설원예작목반도 만들었다. 많을 때는 3만3천㎡(1만평)에서 수박을 재배했다. 탄력을 받은 그는 92년부터는 뭐가 새로운 고소득 분야에 도전키로 하고 전혀 생소한 화훼 쪽을 선택했다.
당시 꽃 생산·수출이 전무했던 구미에서 꽃농사로 승부를 보기로 하고 구미 최초의 화훼단지를 설립한 것. 그는 꽃재배 농가를 다니며 '비법'을 배우려 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던단. "그들이 너무 야박했다"며 옛날을 회상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끈질긴 노력, 연구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백합. 스타디스 등 화훼를 생산. 지금은 중단했지만 일본 수출에도 성공했다. 그를 지켜본 구미시 선산출 장소 장상봉 농정과장은 그가 카네이션을 재배하면서 전문가들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했던 '두 가지 일'을 해냈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는 카네이션 경우 수입된 종자로 꽃을 생산하면서 해마다 종자를 갈아주는 재배법이 일반적이었으나 그는 이를 2~3년에 한번 씩 심고 꽃은 매년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재배법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비용절감은 물론 로열티 절약과 소득까지 늘어나는 일석다조(一石多鳥)의 효과를 거두었다.
두 번째는 생산한 카네이션 값이 폭락할 경우 보통 저장기간이 25일 불과하던 것을 종전 습식저장법을 활용해 45일까지 저장이 가능한 새 저장방식 개발에도 성공한 일. 때문에 꽃값 폭락 때 싸게 내다파는데 따른 손실을 막고 고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농가소득과 생산성을 높이고 영농방법 개선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그는 그동안의 결실로 '새농민상' '장관표창장' '일하는 도민상' '자랑스런 농업인상' 등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그는 '농사 비법을 배우기 위해 옛날에 겪었던 고초'를 생각하면서 어렵게 얻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있다. 노하우 개방과 함께 젊은 영농인 양성을 위한 대학 강의에다 농업경영컨설턴트 등 다양한 활동으로 농촌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또 맨손으로 시작했던 옛날의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틈틈이 노인정, 불우시설 등에 대한 사랑나눔봉사도 잊지 않고 있다. 1989년과 1997년 구미시로부터 '좋은 일 하신 분'과 '구미시민의 모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도 그 떄문이리라.
"이제 힘들게 농사지으려는 젊은이들이 없어 걱정입니다" 라며 한국 농업의 미래에 한숨짓는 그이지만 40년 풍상(風霜)에 검게 그일린 얼굴은 배고픈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으며 앞서가는 농촌을 만들고자 했던 우리 농민들의 건강한 표정, 그 자체다. 경북지역에서 가장 많은 꽃을 생산하고 판매해 '공단도시 구미' 이미지를 '꽃의 도시'로 바꿔가는 그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매일신문 경북중부지역본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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