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친구

그때는 지금의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하였다. 3학년 때 까까머리 그가 전학을 왔는데 혼자 까까중인데도 전혀 민망해 하는 기색이 없었다. 씩씩한 그는 어느 날 우리들을 괴롭히던 6학년 형아의 얼굴을 까까머리로 들이받은 후 졸업할 때까지 우리들의 용감한 영웅이었다.

은행알 추첨으로 같은 중학교를 배정받은 그는 모범생인 나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물에서 놀았다. 우리를 괴롭히던 불량 아이들을 무릎 꿇려 응징하면서 물 바랜 학생모를 삐딱하게 젖히던 그 모습은 영화 '친구' 속의 주인공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그 후 우리는 그를 내내 장군이라 불렀다.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한 그는 졸업 후 나를 찾아와 대학 가는 것을 도와달라 하였고, 나는 1년간 그의 공부를 열심히 도왔다. 그해 추석을 며칠 앞두고 모습을 감추었다가 해가 바뀌어 대학입시를 며칠 앞두고 홀연히 나타난 그는 그동안 제주도에서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입시 준비를 하였다고 했다. 그해 그는 원하는 대학에 당당히 합격하였다.

재학중 공수부대를 지원했다가 손가락 끝에 흉터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방위 근무를 하였고 그러면서 당시 극심한 곤경에 빠진 나를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그때 나의 수호천사로서 그가 보인 눈물겨운 우정은 결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는 수년 후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0월의 어느 해질 무렵 최루탄 연기가 매캐한 대학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아침부터 나를 기다렸다는 그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그동안 강원도 탄광에서 광부 생활을 하였다는 그는 이제 결혼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해 10월에 치러진 그의 결혼식에는 그 흔한 결혼반지도 없었고 신혼여행도 없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그는 증기기관차처럼 숨가쁘게 달렸고 나는 옆에서 그 힘찬 모습을 지켜보았다. 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 사회인이 되었으며 이제 생활의 어려움도 없어진 그의 나이는 어느덧 50을 훌쩍 넘었다.

며칠 전 그로부터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제는 좀 쉬라는 신호라며 대수롭지 않아 하는 그의 음성에 그 옛날 까까머리의 씩씩함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깊은 산속으로 사냥을 떠났다. 한참 앞서가던 아버지가 뒤돌아보니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산속에는 사람을 해치는 맹수도 있는데. 불안한 아버지는 높은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손을 이마에 대고 숲 속을 샅샅이 살펴보았다(見).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 마음을 표현한 글자가 친(親)이라 한다. 나의 친구, 그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친(親)한 마음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임주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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