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의 남쪽 자락 동편에 백운동, 서편에 해인사가 있다면 북쪽 기슭에는 '신계 용사'가 있다. 행정 지명은 성주군 가천면 신계리와 용사리이지만 발품깨나 팔면서 다녀본 사람들은 흔히 줄여서 부르곤 한다. 길을 떠난 때가 9월 초순.
100여일 간 지속된 '염천'(炎天)은 가히 불가마라 부를만 했다. 굳이 돈 내고 찜질방에 가지 않아도 네댓 걸음 걷고 나면 머리털 사이로 팥죽 같은 땀방울이 몽글몽글 솟았다. 하필이면 기록적인 무더위가 찾아온 해에 '동행' 길을 떠나다니 참 재수도 없다며 푸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날은 살살 불어보는 초가을 바람을 만끽하며 쾌적한 기운 속에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었다.
계절의 변화가 이리도 고마울 때가 있었나. 지난 여름 포천계곡엔 참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오늘 가는 신계 용사는 바로 포천계곡 끝이다. 길 안내를 맡은 성주군 문화관광해설사 김해숙 씨는 "마침 가야산 북쪽 자락길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며 "먼저 그 곳에 들러보자"고 했다. 가천면 소재지에서 903번 지방도를 따라 포천계곡으로 가서 계곡을 따라 길이 끝나는 곳까지 가면 신계리에 있는 '청소년적십자 성주수련장'이다. 거기서도 좁아진 길을 따라 1.5㎞쯤 더 가면 용사리에 있는 '우리밀 고추장' 공장에 닿는다.
그 곳엔 20여년 전 터를 잡고 우리밀 살리기와 가톨릭농민회 활동에 전념했던 농민운동가 정한길, 박인숙 씨 부부가 살고 있다. 지금도 그 곳 가공공장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된 재료로 고추장, 된장, 장아찌를 만들어 생협 등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 개량 한복을 입은 부부가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담한 한옥 한 채가 공장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다. 예전 대구시내 한옥집이 헐린다기에 300만원을 주고 사서 이 곳으로 옮겨왔단다. 해체해서 옮겨오는 비용만 몇 배가 더 들었다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집이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농산정'(弄山亭)으로 이름 붙여 나무 현판도 걸어주었다. '산과 어울려 함께 노니는 곳'이라는 뜻일 터.
점심이나 먹고 길을 떠나자며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에게 점심상을 내왔다. 뽕잎밥에 박국, 지난 겨울 담근 김장김치, 매실과 콩잎 장아찌. 정갈하게 차려내온 밥상은 "대접할 게 별로 없다"는 주인 부부의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맛갈났다.
점심상을 물리고 난 뒤 부부는 함께 길을 걸어보자며 채비를 했다. 수십년 전까지 가야산 자락에 규석 광산이 있었는데, 그 곳으로 가는 길을 따라 신계 쪽으로 걸어간 뒤 '만귀정'에서 돌아오는 길이 제법 운치있다고 했다. 길가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빼곡이 달린 밤송이가 초가을 햇살속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잠시 올라가자 '상수도보호구역'임을 알리는 출입통제 철제 가로대가 나타났다. '금바우·올미 주민 일동'이라고 돼 있다. 정겨운 옛 마을이름과 출입통제는 어울리지 않았다. 정한길 씨는 "외지 사람들이 차를 몰고와서 하도 계곡을 오염시키고 쓰레기를 마구 버린 탓에 이렇게 길을 막았다"며 "그저 산책 삼아 걷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했다.
잠시 너른 길이 이어지는 가 싶더니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왔다. 지난 주 누군가 벌초를 한 덕분에 그나마 길 형태를 갖췄을 뿐 온갖 덤불과 나뭇가지가 길을 막아 한여름에는 찾아오지도 못할 형편이다. 이 길은 '가야산 국립공원' 경계 바로 아랫쪽으로 생각하면 된다. 마을 사람들 외엔 거의 발길이 닿지 않다보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얼마 전 태풍이 지나가며 뿌린 적잖은 비 때문에 사람길과 물길을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하기야 물이 넘치면 물길이고, 사람이 지나가면 사람길이 아니던가.
너무 맑고 깨끗해서 손조차 담그기 미안한 옹달샘을 지나고, 키높이 자랑이라도 하듯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지를 거쳐, 가을 햇살 속에 튼실하게 영글어가는 호두밭 너머 신계 쪽에 다달았다. 골짜기 깊은 곳에 예외없이 철제 담장을 둘러친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정한길 씨는 "외지 사람들이 집을 지으면 먼저 울타리부터 친다"며 안타까워했다. 옛 광산길을 찾아 숲속을 걸었지만 쉽게 이 곳을 답사하려면 마을 사이를 잇는 콘크리트길을 택해도 된다. 마을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자 '만귀정'(晩歸亭)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후기 공조판서를 역임한 응와(凝窩) 이원조(1792~1871)가 만년에 귀향해 책과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낸 곳이다. 이원조는 이 곳 계곡의 아름다움을 중국 무이구곡에 견주어 '포천구곡가'를 남기기도 했다. 포천계곡 아랫쪽에서 제1곡이 시작되고 거슬러 올라오면서 만귀정 아래 폭포가 있는 '홍개동'에서 제9곡이 끝난다. '아홉 구비 홍개동 한 하늘이 열렸네/백년을 아껴둔 이 산천일세/새로이 정자 지어 몸을 누이니/속세가 아니로세 별천지로세'. 만귀정은 새로 지은 탓에 옛 모습을 잃었지만 주변 경치는 가히 일품이다. 계곡 옆에 우뚝 솟은 아름드리 소나무도,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폭포수도 시간을 잊은 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들 정도다.
만귀정 옆 계곡을 가로질러 잠시 산길을 따라 걸으면 다시 마을을 잇는 콘크리트길이 나오고 그리로 따라가면 '농산정'이 있는 용사리에 닿을 수 있다. 농산정에서 바라보는 가야산은 가히 절경이다. 동행한 모기홍 화백은 "기가 막히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았다. 한 폭의 그림같다는 표현이 진부할 정도다. 오르고 내리며, 꺾이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능선은 조물주가 한바탕 장난이라도 친 듯 기기묘묘하다. 봉우리를 휘감아도는 구름은 신선이 하얀 옷자락을 휘날리며 허위허위 오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한길 씨는 "이런 아름다움을 그저 보고 즐기면 될텐데 사람들이 너무 무책임하다"며 한탄했다. 여름이면 쏟아져들어오는 사람들이 산더미같은 쓰레기를 남기고, 까치며 까마귀가 쓰레기더미를 뒤적거려서 계곡이며 길까지 난장판이 된다고 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봉우리에 걸쳐있던 구름이 끝내 비를 뿌린다. 흩날리는 빗 속에 걷는 산길, 그 감흥 속에 푹 젖어드는 느낌이다.
글·사진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성주군 문화관광해설사 김해숙, 성주군 문화체육정보과 054)930-6067.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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