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뭔가 기억하는 일에 둔하다.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말이 어쩌면 나를 두고 한 말일지 모르겠다. 그 중에서 특히 잘 잊어버리는 것이 전화번호다. 가끔 내 휴대폰 번호도 기억이 나지 않아 지인이 물었을 때 멍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번호가 하나 있다. 자주 사용한 것도 아니고 메모해 두었거나 기억하려고 애쓴 적은 더욱 없다.
일을 마치고 전화를 보니 부재중 번호가 떠 있다. 번호를 보는 순간 이십 년 세월에도 늙지 않은 한 사람을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이성적 생각보다 발 빠르게 내 마음은 그 가을 그 사람을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휴대폰에 찍힌 고딕체 숫자 하나하나에 영상이 오버랩되면서 묻어두었던 옛날 기억이 되살아났다.
누구든 기억 속에 생생한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십대에 만난 그와 나는, 감성은 지척이었는데 거리가 천리였다. 여느 연인들처럼 만날 수 없는 형편으로 우리는 전화 데이트를 자주 했다. 그 시절, 그는 귀한 휴대폰을 갖고 있었지만 특별한 경우 외엔 공중전화를 이용했고 매일 만 원짜리 공중전화카드를 한 장씩 써야만 집으로 들어갔다.
전화로 양이 덜 찬 우리는 주로 일요일에 만나 빈칸을 채워나갔다. 그는 준비해 온 시를 내게 들려줬고 나는 그 감성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좋아하는 시는 대부분 애틋한 사랑을 놓쳐버리는 이별의 시가 많았다. 이별을 예견이라도 하듯 만날 때마다 그는 내게 이상한 약속을 했다. 세상천지가 바뀌어도 휴대폰 번호만은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결혼은 서로 갚을 것이 많은 사람끼리 한다 했던가. 짧은 기간 동안 그는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주지 못했으니 서로 갚아야 할 것이 맞지 않았던 인연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힘에 버거운 집안 환경에 맞닥뜨리게 되어 제법 큰 열병을 앓고 끝이 났다.
묻혀 있었던 영상과 숫자는 한 덩어리가 되어 내 감수성에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일에 초심을 끝까지 간직하고 지키며 살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세상이라 의도적으로 잊어버리기도 하고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이십 년 이상 같은 전화번호를 사용하기는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휴대폰에 찍힌 그의 번호는 그때의 약속을 지켰다는 듯 당당하다. 길지 않은 숫자에 이십 년 전이 줄줄 엮여 나왔다. 감성은 길게 통화 버튼을 원할지 모르지만 이성은 짧고 냉정한 버튼으로 이십 년을 단번에 지워버렸다. 나는 부재중이다.
주인석(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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