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易地思之

역지사지는 맹자(孟子)에서 나왔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하우, 후직, 안회의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고 항상 다른 사람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상황을 바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고사성어 가운데서 널리 쓰이는 말의 하나로 노랫말로도 등장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싸울 때면 곧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러나 널리 쓰인다는 것은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말로는 쉬운데 실천은 잘 안 돼 다툼이 생기고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내 것, 내 가족, 내 일이 소중한 삶에서 남의 처지로 생각할 여유는 어렵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다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지사지는 갈등과 다툼을 줄이는 소통이다. 공정한 사회의 기본이기도 하다. 남의 눈과 귀를 빌린다면 내 것을 위한 반칙을 선뜻 선택하기엔 찜찜하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을 벌이는 일본과 중국이 한국 정부에 물밑 외교를 벌이고 있다. 서로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한다. 영토 분쟁의 원인과 배경을 따지기에 앞서 적잖은 사람들은 일본에 역지사지를 충고한다. 센카쿠열도 영유권 주장에 앞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억지에 분통을 터트리는 한국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라는 요구다.

올 국정감사장도 시작하자마자 여야가 충돌하고 있다. 정부와 한배를 탄 여당으로서는 야당의 질책과 비판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이고 야당의 입장에서는 정부여당의 정책이 독선적이고 마땅치 않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면 찬성이 반대로 변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는 돌변의 모습들은 우리 정당정치의 갈등과 한계를 엿보게 한다. 조간신문에 금값으로 뛴 배추 세 포기를 사려고 서너 시간을 기다린 아줌마들이 환호하는 사진이 실렸다. '심봤다' 식이다. 시중 가격보다 30% 싸게 팔았다니 고작해야 일만 원 안팎이지만 서민들에겐 반가운 단비다. 한푼 한푼 소중한 서민들의 알뜰하고 소박한 삶을 이해하지 않고선 친서민 정책이나 공정사회는 말뿐인 역지사지다.

바둑 격언에 상대방의 급소는 곧 나의 급소라는 말이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정답이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느끼고 겪은 분노와 좌절을 남에게 반복하지 않는다면 싸울 일도 많지 않다. 역지사지는 영원한 숙제일까.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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