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중·고생 年 2천명 자퇴해도 학교는 뒷짐

"결석 자주해도 선생님 연락 없었어요"

"학교에 안나가도 선생님은 연락 한 번 없었어요. 누군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을텐데···."

내년 대학진학을 위해 수시지원을 한 A(18) 군은 중학교 3학년때 학교를 그만뒀다. 자퇴 뒤 2년 동안 방황하다 마음을 다잡고 얼마전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A군은 "불량학생으로 찍힌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나를 삐뚤게 보는 선생님이 싫었다"며 "자퇴하는 날 아무런 표정이 없는 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고 했다.

매일 적지않은 중·고교생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다. 자퇴 학생 상당수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공교육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학교측은 학생들의 적응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자퇴를 권유하고 있는 지경이다. 전문가들은 전문기관을 통한 맞춤형 상담이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상담소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자퇴 방관하는 학교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학업을 중단한 지역 중·고교생은 약 2천명으로 매일 평균 5.4명의 학생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학업 중단 이유는 학습부진 등 학교 부적응이 1천155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 청소년 상담사는 "상담하다보면 실제로 자퇴를 고려하는 학생들은 이보다 더 많다"며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자퇴를 하겠다는 아이들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 해 2천명씩 학교를 떠나는 데는 학교와 교사의 미온적인 대응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경북대 김경식 교수(교육학과)는 "학교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당연히 학교를 안 나오게 마련이다"며 "학교에서는 이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자퇴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에 자퇴한 L(16) 군은 "학교에 적응 못해서 결석을 자주 했는데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퇴학과 자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4년째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P(27·여) 교사는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학우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자퇴를 결정하면 말리지 않는 경우를 자주 봤다"며 "사고를 친 학생에게는 암묵적으로 자퇴나 전학을 권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대구시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뚜렷한 방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상담을 통해서 미리 학생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전문 상담기관 태부족

상당수 학생들은 전문적 상담 한 번 없이 학업 중단을 결정하고 있었다. 대구청소년종합지원센터가 2009년 대구지역 학업 중단 청소년 2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업 중단 후 전문기관에서 상담을 받아본 학생은 전체의 20%(48명)에 불과했다. 자퇴 학생 대다수는 선배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별다른 상담 없이 스스로 자퇴를 결정한 것.

그나마 교육청과 각 학교에서 '학생생활지원단'(Wee Center)과 'Wee 클래스' 등을 통해 자퇴 고민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전문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대구시 214개 중·고등학교 중 Wee클래스를 운영하는 학교는 108곳으로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마저도 자격을 갖춘 전문 상담교사는 고작 30여 명 뿐이고 70여 곳은 인턴교사가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고교 교감은 "이른바 문제학생도 사연을 들어보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학생 상담을 담당할 사람이 모자란다"며 "단순 인턴교사들이 담당하기에는 벅차다"고 했다. 상담에 목마른 학생들은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등이 운영하는 곳에서 상담을 받고 있으나 비체계적인 운영과 관계기관의 비협조, 운영비 부족 등으로 제역할을 못하는 곳이 많다.

실제 시교육청은 청소년상담소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청소년상담 방식을 일괄적으로 통일하면 다양한 상담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떤 상담기관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행정기관의 몰이해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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