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구호만으로 공정사회 안 된다

1815년 유배지 엘바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백일천하'에 그친다. 나폴레옹의 패전은 전쟁의 목적이 오로지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였던데다 자신을 과신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사를 잘못한 것이 패전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나폴레옹은 뛰어난 전략'전술가이긴 했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면 부하의 공을 가로채는 게 다반사였다. 자신의 공적만으로 승리한 것으로 거짓 보고를 올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또 자신의 경쟁자가 될 만한 뛰어난 장군들은 견제하면서 절대 요직에 앉히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도 마땅히 믿어야 할 사람을 믿지 않았다. 루이스 니콜라스 다부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데다 작전술도 뛰어나 중용해야 했으나 후방으로 보내버렸다. 대신 기용한 에마누엘 드 그루시는 서쪽으로 진군하는 프로이센군이 동쪽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착각해 엉뚱한 곳에서 추격하다 패전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미셸 네이는 웰링턴을 상대로 진흙탕에서 돌격을 감행하다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더욱이 적장 웰링턴이 '병사 4만 명과 맞먹을 정도'라고 평가했던 탁월한 전술가 나폴레옹도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엘바 섬에서 탈출한 그는 불규칙한 생활과 말단비대증 등 지병으로 체력과 판단력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참모들은 정면 승부 대신 우회 공격을 주장했지만 무모한 돌파를 강행하다 패전했다.

이처럼 전장에서 장군의 역할은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천안함 사태 이후 군 개혁이 화두로 등장했었다. 구체적 개혁과 쇄신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장군들이 문제'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한 예비역 해군 장교는 "한국군엔 땀내 나는 장군복과 흙 묻은 장군화가 없다"며 "장군 계급에 끼어 있는 거품만 제거해도 군 개혁의 50%를 달성한다"고 장담했다. 장군들이 자신은 현장에 가지 않고 병사들에게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 8월 한미연합훈련과 서해합동훈련 당시 우리 군 장성 3명 가운데 1명이 여름휴가를 떠났다고 한다. 두 훈련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우리 군의 경계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실전을 가정하고 실시된 훈련이었다.

7월 한미연합훈련 때 휴가를 떠난 장성은 육군 46명을 비롯해 국방부 및 국방부 직할 부대 5명, 공군 4명, 합참'연합사'해군 각각 2명 등 61명이었다. 천안함 서해 폭침 현장에서 실시된 육해공 합동 대잠수함 훈련 기간에 휴가를 간 장성은 육군 48명 등 모두 79명으로 더 늘어났다. 천안함 사태 이후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실시한 9일간의 훈련 기간 동안 전체 장성의 3분의 1이 휴가를 떠난 셈이다.

요즘 이명박 정부의 화두는 '공정사회'다. 외교부 등에서 벌어진 채용 인사 비리와 총리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특권 행사와 반칙이 횡행한 사실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궁여지책으로 짜낸 구호다. 공정사회 구호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사기꾼도 가훈을 근면'정직'성실로 한다지만 5공 비리의 전두환 정권 시대에도 국가 슬로건은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따라서 구호만 소리 높여 외친다고 공정사회가 실현되지 않는다. 공정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부산 스폰서 검사 특검 결과 등을 보면 여전히 반칙과 특권이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발 병역의무라도 제대로 마친 사람을 공직 후보자로 내정하자. 정부 여당의 수장들이 모두 병역을 마치지 않은 터에 새로 외교부장관으로 내정된 사람도 선천성 턱관절 장애란 '희귀한 병명'으로 병역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래선 '병역기피당' '병역기피 정부'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아울러 공직 후보자들에게 전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국민의 4대 의무라도 숙지하자. 4대 의무는 국방'납세'교육'근로의무다.

曺永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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