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브랜드 시대다. 수입 쇠고기에 대항하기 위해 이제 웬만한 농가에서는 브랜드화를 통해 한우 고급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어느 고장을 가나 '○○한우'라는 푯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우 브랜드가 너무 많아 헷갈리는 경우도 적잖다. 이렇다 보니 많은 주부들이 한우고기를 고를 때 브랜드보다는 육질을 따진다. 주부 최영란(52'대구 수성구 신매동) 씨는 "한우고기를 살 때 고기 색깔이나 등급을 주로 본다. 고깃집에 갈 때도 브랜드보다는 맛있다는 입소문을 고려한다"고 했다.
◆한우 브랜드 천국
'팔공상강한우' '김무열순한우쇠고기' '달성참꽃한우' '고향우시장' '신나리한우'…. 모두 대구의 한우 브랜드들이다. 대구에는 한우 브랜드가 10개가 넘는다. 그렇다면 전국적으로 한우 브랜드는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가 있다. 축산물등급판정소가 조사한 전국 한우 브랜드(2009년 8월 기준)는 무려 176개. 이 가운데 특허청에 아직 등록되지 않은 브랜드도 21개나 된다. 176개 브랜드 가운데 현재 활동하고 있는 브랜드는 135개이고 사업을 중단했거나 판매 실적이 없는 브랜드도 41개로 전체의 23%가 넘는다.
특히 대구경북은 전국에서 한우 브랜드가 가장 많다. 모두 58개로 전국의 31.8%를 차지한다.
한우 브랜드화는 수입 쇠고기에 맞서 한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지역 단위 농가들이 뭉쳐 브랜드 경영을 통해 사료 통일화와 환경 정비 등 개선작업을 한 뒤 그에 따라 한우 품질과 유통 시스템 투명화를 높인다는 전략이었다. 정부는 한우 브랜드 가운데 우수한 경영을 보인 곳에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대구축협, 상주축협, 의성축협, 경북대구한우조합 등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적으로 29개의 경영체가 지원받고 있는 것.
브랜드 사업은 한우 품질을 크게 개선하는 등 효과도 거두었다. 전국적으로 보면 브랜드 사업 초창기인 2000년에는 1등급을 받은 한우의 비율이 24.8%에 불과했지만 이후 계속적인 증가세를 보였고 올해 6월 기준으로 61.5%까지 올랐다. 경북 또한 2000년에는 겨우 11.3%에 불과하던 한우 1등급 비율이 올해 6월에는 61.4%까지 증가했다. 10년 사이 3~6배의 증가를 기록한 것이다.
◆'소탐대실'
한편으로는 뚜렷한 계획과 준비 없이 브랜드화부터 추진하다 보니 부작용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소비자들의 인지도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 일부 브랜드는 오히려 '한우=명품'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브랜드 인지도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다. 또 경영체마다 브랜드 개발에만 치중해 막상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에는 소홀한 점도 있다.
이는 설문조사에도 나타난다. 한 조사에서 국내 소비자 100명 가운데 3명 이내만이 한우고기를 구입할 때 브랜드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최근 전국 1천2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한우고기 구입 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신선도'안전성이 30.3%, 가격 27.3%, 맛'품질 24.5%, 용도 11.7%였다. 또 한우고기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도 등급표시 36.6%, 고기맛 29%, 고기 색 24.3%인 반면 브랜드는 10.1%에 그쳤다.
결국 브랜드보다는 등급 표시나 고기의 맛'색을 통해 한우고기의 품질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건국대 정경수 교수는 "소비자들이 한우고기를 구입하거나 품질을 판단할 때 브랜드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것은 그동안 정부가 주도해 시행한 한우 브랜드 정책의 효과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한우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의 한우 브랜드는 브랜드가 아니고 지역 이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브랜드가 모두 다르고 차별성이 없는 문제도 적잖다"고 말했다. 또 지역적으로 흩어져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니 소비자에게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브랜드들은 막상 브랜드를 붙이고도 팔지 못해 공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한우자조금관리위 관계자는 "횡성한우처럼 브랜드 파워가 있으면 괜찮지만 다수의 한우 브랜드 경영체들은 물량을 다 팔지 못하는 등 비효율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차별화가 살 길
한우 브랜드가 많아지자 보완책으로 등장한 것이 광역 브랜드화다. 각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브랜드들을 통합해 대형 유통업체와의 교섭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경북도 광역 브랜드인 참품한우는 이 같은 시도로 태어나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지역이기주의 등 각 브랜드별 이해득실 계산으로 인해 광역브랜드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강원도는 도내 6개 한우 브랜드를 묶는 광역 브랜드화 사업을 2년 가까이 추진해 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차별성을 강조한다.
브랜드마다 특화시킬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지역 위주 브랜드를 통'폐합하는 광역 브랜드 사업은 관리나 판로 개척 등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진정한 경쟁력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영남대 생명공학과 여정수 교수는 "일본의 고베 소고기는 세계적인 명품 고기로, 가고시마 소고기는 우수한 개량 고기로 소비자에게 각인돼 있다"며 "지금까지 브랜드 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이제는 브랜드 차별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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