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먼저 서양의 식민 지배를 받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근대미술이 우리와 다른 점은 서양화의 도입 시기가 좀 더 이르고 또 유럽 양식과의 직접적인 접촉이었을 것이다. 인상주의 경향이 주류였다고 하는 한국 근대미술은 해방 후까지 상당기간 우리의 감수성을 지배해온 구상 미술의 중요한 특징이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 아래서 그들의 정서를 통해 전달된 것인 탓에 정작 유럽의 인상파 특유의 표현기법은 잘 볼 수 없다.
물감을 작은 색 점으로 분할해 즉흥적인 터치나 혹은 단속적인 필치로 화면을 조직적으로 구성하는 식의 예는 잘 볼 수 없고 그 대신 전통서화에서 보이는 (감필법의)붓놀림처럼 절약된 필획으로 그린 예들이 1930년대 김종태의 유화나 50년대 이중섭의 소 그림 연작에서 현저한 특징으로 목격된다.
어린 소녀가 상체를 굽히고 다리를 꼰 채 바닥에 손을 짚고 앉아 한 손으로 책장을 넘겨보고 있다. 배경의 짙은 음영과 대조되는 밝은 노란색에 의해 전면으로 크게 부각된 인물의 윤곽이나 상의의 주름을 보면 바로 수묵화에서 사용된 필획처럼 절약적인 붓질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마치 일필휘지로 붓을 사용하듯 했는데 특히 모델의 오른 팔은 어깨에서부터 책을 잡고 있는 손까지 길게 한 선으로 내리긋고 있어 더욱 서체적인 느낌이 강하다. 스케치하듯 빠른 필치로 단숨에 그린 손일봉의 1935년 작 소품이다.
유화 도입기의 작가들은 아직 붓글씨에 익숙한 세대들이었던 만큼 이들의 초기작에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로서 서양의 근대회화에서는 볼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단번에 그려내는 필획의 사용은 윤곽선이라기보다 옷의 주름과 배경과의 구분을 위해 사용된다. 단발머리의 표현도 그늘진 얼굴의 표현도 단색으로 한 번에 처리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형상은 어두운 배경으로부터 뚜렷이 살아나고 있다.
암갈색과 밝은 노란색이 조성하는 대담한 명암의 콘트라스트는 색채의 조화가 동시에 고려되어 30년대 중반의 유화로서 다소 이례적일 만큼 탁월한 솜씨의 강한 인상을 준다. 소녀의 그늘진 얼굴에 반사된 역광 표현도 이 작가가 빛과 색채에 민감한 감각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모델인 어린 소녀의 귀여운 모습에 작가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가 있다.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한 시기의 작품이다.
김영동(미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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