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일 오전 11시쯤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차로 50분을 달려 도착한 코르샤코프시 예술학교(School Of Art)는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수업이 없는 토요일인데도 노란 머리의 7∼10세 러시아 학생들은 곱게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이방의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꿈 같은 선물을 준 대구청년민통 아저씨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 이들은 지난해 8월 청년민통 초대로 대구를 방문해 우방랜드, 스파밸리, 팔공산 등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에요. 5개월 동안 수없이 아리랑과 부채춤을 연습했어요."
교사 고르브첸코 마리아 세르게비 씨는 "대구에서 손님이 오는 날만 기다리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꼬마 악사들의 '아리랑' 가사 발음은 완벽에 가까웠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따뜻한 정을 나눠준 대구 아저씨들을 위해 스스로 준비했다고 한다.
학부모 브로베시치(34) 씨는 "아이들이 대구를 다녀온 후로 어찌나 자랑을 늘어놓던지, 어떤 분들인지 꼭 한번 뵙고 싶었다"고 말했다. 라티냐(34·여) 씨도 "동양의 가족 문화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대구에서 온 분들이 친삼촌과 같이 아이들을 대하는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러시아 전통 공연과 아리랑을 들고 일본 10차례, 중국과 영국 등에서도 수많은 공연을 펼쳤을 정도로 한국과 단단한 인연을 맺었다.
학부모들도 정성을 다보였다. 생전 처음 만들어 보는 한국식 점심상이었지만 과일을 깎고, 김치를 담가 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요리책을 구해 두 명씩 조를 나눠 음식을 준비했어요. 아이들에게 귀중한 분은 저희한테도 훌륭한 분들이죠."
2시간여의 짧은 만남이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하나 둘씩 울음을 터트렸다. 접착제를 발라 만든 조개 액세서리를 들고는 "가지 마세요.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쏟아냈다. 한참 동안이나 껴안기와 머리 쓰다듬기를 반복한 대구 청년들도 속 울음을 삼켰다. "내년에도 또 올꺼니까…. 그때까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거라."
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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