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의 단풍] 욱수골 · 국립대구박물관

단풍이 내게로 왔다. 책갈피에 고이 끼워 두었던 빨간 단풍잎을 꺼내보자.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내달 초쯤에야 단풍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이지만 도심 곳곳에는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이제 기억 한가운데 묻어두었던 아스라한 단풍의 추억을 아로새겨보자. 매년 떠나는 단풍여행이지만 교통 체증과 경비, 인파로 시달리기 일쑤다. 이번에는 번잡한 단풍 길이 아닌 도심 속 새색시같이 자태를 감추고 있는 단풍의 속살 속으로 떠나보자.

◆욱수골='등산+단풍'

배낭 하나 둘러메고 단풍놀이와 등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욱수골(대구 수성구 욱수동)은 도심 속 단풍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욱수골 공영주차장 앞에 위치한 등산안내도 표지쪽 산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폭 3, 4m 정도 되는 산길은 경사가 완만해 오르기에 딱이다. 편평하게 다져진 흙길 아래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20여 분 오르면 왼쪽에 망월체력장이 나온다.

각종 헬스기구들이 완비된 이곳에서 단풍놀이의 덤으로 가벼운 운동을 즐길 수 있다. 운동 후 다시 산길을 오르다 보면 어디선가 이름 모를 산새의 지저귐과 풀벌레 소리의 화음이 귓전을 스친다. 누군가가 쌓아놓았을 정성 어린 돌탑들은 단풍객들을 구도의 세계로 이끄는 듯하다. 산길 양쪽으로 노랑, 빨강, 자줏빛 단풍들이 물감을 뿌려놓은 듯 스펙트럼처럼 다가온다. 지나는 길에 한 나무에 가지가 다섯 개 달린 오형제나무가 눈길을 끈다. 오형제나무는 번개에 맞아 쓰러진 나무에서 다섯 가지가 자라면서 붙여졌는데 손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손가락나무라고도 불린다.

숨이 찰 정도로 30여 분을 오르면 드디어 솔밭정. 정자에서 간단한 식사를 나누며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로 한가롭다. 잠시 휴식 후 지금까지의 단풍보다 더 짙고 은은한 단풍을 보려면 똑바로 봉암사(0.71km) 쪽으로 가면 된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산길 속에 펼쳐지는 선홍빛 단풍이다. 이곳 단풍은 유명 단풍지의 화려함이 아닌 숫색시처럼 부끄러움을 탄다. 산길 양쪽에 수줍은 듯 숨어 있지만 맑디맑은 노란색, 선홍빛 자줏색이 속살을 드러낸다. 20여 분을 걸었을까. 봉암사 욱수지로 내려가는 길과 만보산책로로 이어지는 팻말이 나온다. 만보산책로를 따라 10여 분 오르막 산길을 가면 '흔들의자나무'(산길 옆에 있는데 기자가 붙인 이름임)에 앉아 생동감 있게 단풍을 느낄 수 있다.

▶가는 길:월드컵대로~덕원고~욱수골 공영주차장~망월체력장~솔밭정~봉암사~만보산책로

▶산행코스

- 만보산책로:욱수골주차장 입구~욱수지~봉암사~욱수정~만보정~청계사~대구스타디움(4시간 10분)

- A코스:사직단~한씨묘~만보정~욱수정~감태봉~박씨제실~성암산~덕원고(5시간)

- B코스:자동차극장~대덕산~만보정~한씨묘~헬기장~경기장헬기장(2시간 30분)

- C코스:욱수골주차장 입구~망월체력장~솔밭정~만보정~욱수정~봉암사~욱수골주차장 입구(3시간 10분)

◆국립대구박물관='문화의 향기+단풍'

국립대구박물관(수성구 황금동)은 단풍과 문화의 향기가 함께 살아 숨쉰다. 박물관 내 벤치에 앉아 은은한 커피의 향 속에 떨어지는 붉게 물든 단풍의 운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문화의 향기는 덤이다. 박물관 정문 옆 계단을 따라 산책로를 걸으면 호젓함 속에 단풍의 은은한 향기를 맛볼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마음의 무거운 짐은 아스라이 사라지고 멀리 산새소리만이 자신을 일깨운다. 10분 정도 걸리는 산책로 곳곳에서 시민들은 단풍과 더불어 독서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자귀나무, 말채나무, 화살나무, 배롱나무 등에 물든 짙은 단풍은 이름 모를 산새소리와 어우러져 가을의 낭만을 노래하고 있다. 연인끼리 왔다면 산책로를 한 바퀴 돈 뒤 오솔길을 걸으면 된다. 박물관 울타리를 벗어나면 바로 범어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어린이회관(750m), 수성구민운동장(570m)까지 산책로가 이어진다. 단풍길 곳곳에 보당(절 입구에 깃발을 달았던 장대), 고려시대 3층 석탑, 칠곡 복성리 고인돌 유적, 상동(上洞) 청동기 집터 등 옛 유적들과의 만남도 기대된다.

▶가는 길:지하철 2호선 만촌역 3번 출구에서 순환3, 순환3-1, 349, 414, 414-1, 427, 449, 수성1, 수성1-1, 100번 버스 환승.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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