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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사] "한국의 P&G 만든다"…김준일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 회장

'락앤락'(Lock & Lock)은 가정용품 분야에서 신화가 되고 있는 기업이다. 밀폐용기 하나로 지난해 2천7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홈쇼핑에서 1분당 1천만원 매출의 대박도 터트렸다. 주식시장 상장 후 시가총액이 1조원을 돌파, '1조 클럽'에도 가입했다.

'락앤락이 만들면 다르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오늘도 세계 130여 개국에서 새로운 신화에 도전하고 있는 락앤락의 김준일(58) 회장은 "항상 크리에이티브(Creative)하고 도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신화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1978년 군에서 갓 제대한 그는 뭘 해서 먹고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신문에서 '수입 자유화' 뉴스를 보고는 수입상품 유통에 뛰어들었다. 잘 팔릴 만한 상품을 선택해 수입했는데 200개 상품을 수입하면 196개가 대박을 쳤다.

하루에 서울 강남 아파트 1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지만 그는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남의 브랜드만 키워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조업은 유통보다 3배는 더 힘들었다. 그는 '브랜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2년 동안 해외시장을 찾아다니면서 어떤 아이템으로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 고민을 거듭했다. "결론은 밀폐용기였습니다. 컬러가 단순하고, 국가별로 사이즈 차이가 없어야 하고, 계절에 따른 수요 변화가 적고, 문화적 차이가 없고, 집에서 많이 쓰이는 제품이어야 한다는 등의 20여 가지 조건에 맞아 떨어졌죠."

그러나 막상 밀폐용기 시장에 뛰어들려고 보니 10만여 개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기존 제품과는 전혀 다른 제품을 내놓아야 했다. 노력 끝에 1999년 걸착고리형 제품을 개발, 해외전시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시장 반응은 시원찮았다.

이때 세계 최대 홈쇼핑채널인 QVC의 캐나다채널에 진출한 게 성공 신화의 시작이었다. 캐나다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했다. 국내 홈쇼핑업체들도 뒤늦게 손을 내밀었고 2003년 1천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너무 잘 팔리니까 덜컥 겁이 났습니다. 국내시장 규모에 비해 가수요가 붙은 것이라는 판단이었죠. 실제로 이듬해 국내 매출은 800억원대로 줄었습니다. 대신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 일본·영국에 잇따라 진출하고 중국에 공장을 지었던 게 이후 성장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는 2006년 9월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환경호르몬의 습격'이란 시사프로그램을 잊지 못한다. 플라스틱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이 건강을 위협한다는 내용이 방송되자 소비자들이 멀쩡한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버리기 시작했던 것. "플라스틱 용기에서 검출되는 환경호르몬보다 공기 속에 존재하는 환경호르몬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방송은 밀폐용기를 환경호르몬의 주범으로 몰았습니다. 저희는 소송에 나서는 대신 중국시장 확대에 집중했고, 중국에서 성공하면서 회사는 다시 안정됐습니다."

락앤락의 중국시장 전략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중국인들이 '브랜드' 충성도가 강하고 수입품을 선호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중국 공장에서 만든 제품 대신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입해 팔았다. 1호점도 상하이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건물에 냈다. 이 같은 고급화 전략이 주효하면서 락앤락은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됐다.

락앤락은 요즘 소재의 구분 없이 밀폐용기를 만들어낸다. 또 냄비와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뿐 아니라 레저·욕실용품으로 품목을 다양화하고 있다. 10% 정도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더욱 끌어올려 2013년에는 '글로벌 넘버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의 최종 목표는 '한국의 프록터앤드갬블(P&G)'이다. "한국에 세계적 제조기업은 많지만 제조와 유통, 마케팅을 모두 잘하는 P&G 같은 회사는 없다고 봅니다. 저희 락앤락을 그런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저희가 잘 하면 다른 한국기업들도 도전해서 제2, 제3의 P&G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벌써 8년째 해마다 한 번씩 백두산에 올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곤 한다는 그는 대구가 고향이다. 삼덕초교·경북중을 졸업한 뒤 상경, 방송통신대를 나왔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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