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배추 망다이로 간다."(망에 든 배추가 한 망당 가격으로 시작합니다.)
'딸랑딸랑' 경매를 알리는 쇠종 소리가 장내에 울리자 파란색 모자를 쓴 경매사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든다. 마이크를 낀 경매 안내사는 연방 '망배추 망다이'이를 되풀이한다. 이내 경매사들의 눈치작전이 시작된다. TV 리모컨만한 전자경매응찰기를 점퍼 안주머니에 숨긴 채 배추 가격과 수량을 맞추느라 손가락이 분주하다. '김일수, 355번, 5천원…' 야구장 전광판처럼 생긴 이동식 전자 경매판에 경락가와 낙찰받은 이가 뜨자 355번 경매사는 환호했다.
◆2년 연속 전국 1위.
22일 오전 11시쯤 찾은 대구 북구 매천동 대구시농수산물도매시장 안 ㈜효성청과 경매장. 배추, 양파 등 각종 신선한 채소류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채소를 한가득 실은 지게차는 분주하게 오갔고 중·도매인도 좋은 물건을 잡느라 바빴다. 이곳은 전국 66개 대형 청과법인 중 성장률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효성청과다. 올해 상반기 거래 물량이 지난해 2만9천604t보다 23.4% 증가한 3만6천522t을 기록했고, 거래금액도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거래금액은 606억9천300만원으로 지난해 485억2천700만원에 비해 25.1%(121억6천6백만원) 증가했다. 물량과 금액에서 전국 도매시장법인들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인 것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농수산물도매시장도 부쩍 자랐다. 효성청과 등 법인 3곳, 농협운영 공판장 2곳 등 모두 5개의 업체가 몰려 있는 농수산물도매시장은 지난해 전국 20개 농수산물도매시장 중 성장률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에도 12.2% 성장률을 보여 1위 자리를 지켰다. 효성청과의 가파른 성장세가 농수산도매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견인차로 작용한 것. 실제 효성청과는 10년 전 농수산물도매시장 점유율의 10%대(230억 매출)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지금은 5배나 증가한 1천300억원의 매출로 26%대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농수산물도매시장 관리사무소는 "대형 유통업체 증가와 수입농산물 대량 유통 등의 영향으로 2006년까지 4년간 거래실적이 감소했지만 2007년부터 꾸준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이는 같은 기간 효성청과의 큰 실적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성장 비결은?
21년 베테랑 신도철(52) 경매사는 "투명한 전자경매시스템과 물량 집하능력 향상, 산지 홍보 강화 등으로 농심(農心)을 사로잡은 것이 효성의 가장 큰 성장 동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농수산물도매시장은 중도매인과 경매사의 유착 등 각종 비리로 얼룩져 농민들의 신뢰를 잃었었다. 그러나 효성청과를 중심으로 농심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10년 전 김윤식(54·사진) 대표가 조타수를 맡을 때만 해도 효성청과는 난파직전이었다. 중도매인과 경매사의 비리가 만연한 데다 49명의 중·도매인이 회사를 떠났다. 자정분위기가 일자 잇속을 챙기지 못한 중·도매인의 반발이 심했던 것. 김 대표는 "중·도매인들이 판로까지 함께 가지고 나갔으니 거래 물량이 폭락했고 한꺼번에 전문 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탓에 회사가 휘청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투명성 확보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대구 달성군 옥포면에서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논과 밭을 일궈온 터라 흙의 진실함과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먼저 강원도 등 전국 작목반을 찾아다녔다. 깨진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다. 한번은 강원도 평창 내면리의 고추와 고랭지 물량을 출하 받기 위해 한 달간 머문 적도 있었다. "여러 날 숙식을 하면서 농사일도 거들고 그날그날 작목반에 경매가격을 보고했어요." 결국 농민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직까지 그곳과 거래를 터오고 있다. 이와 함께 중·도매인들의 재교육은 물론 꾸준한 판로 개척 등 임원과 중도매인 100여 명이 밤낮없이 뛰고 있다.
서예국제심사위원이기도 한 김 대표는 "서예 필체처럼 곧고 바르게 경영해 나가겠다"며 "무엇보다 항상 농민의 입장에 서는 효성청과로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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