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 30여 마리가 구미 해평면 해평습지를 찾았다. 흑두루미들은 예년 같으면 이곳에서 1주일에서 열흘 동안 머물며 일본 이즈미로 날아가기 위해 지친 날개를 추스르며 체력을 비축했다.
하지만 올해 해평습지는 흑두루미에게 종전처럼 더 이상 평화로운 곳이 아니다. 흑두루미들이 편안하게 쉬던 넓은 모래톱은 자취를 감췄고 풍부했던 먹이는 찾기 힘들다. 여기에다 굴삭기가 굉음을 내며 모래를 퍼내고, 덤프 트럭들이 쉴새없이 모래를 실어나르는 등 어수선한 곳이 되고 말았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으로 인해 해평습지가 흑두루미들이 마음 편하게 쉬기에 부적합한 곳으로 전락한 것이다.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등 각종 희귀 철새의 집단 도래지인 구미 해평습지가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구미 해평습지는 낙동강 사업 칠곡보와 구미보 사이에 있다. 낙동강 상류의 빠른 강물이 가져온 풍부한 영양물이 침전·퇴적돼 그 넓이가 760㏊나 된다. 모래톱과 물풀 등이 어우러져 형성된 거대한 하천습지다. 낙동강 구미 숭선대교 상류 1㎞에서 숭선대교 하류 괴평리까지 7㎞에 걸친 지역이 바로 해평습지다.
해평습지는 연간 6천∼9천 마리의 재두루미와 흑두루미가 찾았다. 철새들 이외에도 독수리와 원앙, 왜가리, 백로, 까치, 황조롱이 등 텃새들도 더불어 서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미는 공업도시임에도 두루미가 찾는 청정지역이란 찬사를 받았으며 해평습지는 국내·외 환경 전문가들은 물론 사진작가, 일반인들까지 앞다퉈 찾는 국제적 철새 도래지가 됐다. 덕분에 구미에서 국제 환경심포지엄까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11월부터 낙동강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해평습지는 점차 제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풍성하던 모래톱은 준설로 점차 줄어들었고 굴삭기와 트럭이 일으키는 소음에다 트럭 행렬로 두루미 등 새들이 쉴만한 공간이 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두루미 등 새들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했던 해평습지 주변 농경지들도 준설토를 쏟아붓는 리모델링 사업에 포함되면서 경작이 중단돼 새들은 먹이인 볍씨 등을 더 이상 구할 수도 없게 됐다.
흑두루미 30여 마리가 올해 처음으로 해평습지를 찾았지만 환경 전문가 및 주민들은 올해 해평습지를 찾는 새들이 예년 수준보다 크게 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흑두루미 등 새들이 해평습지에 머무는 기간도 예년의 7~10일에서 2, 3일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환경전문가들은 "준설로 해평습지의 모래톱과 수변부 식생대가 사라지면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한 두루미 등 철새들이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새들에게 안정적인 먹이 공급과 휴식처를 제공하는 등 철새들의 낙원인 해평습지를 지키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구미시 관계자는 "상류 쪽에는 대체습지를 조성하고, 준설로 훼손된 모래톱은 주변 지역에 횃대 설치, 바위쌓기 등 대체 서식지 조성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구미·전병용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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