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덮인 만년설, 세찬 눈바람과 강추위…. 오랫동안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며 '신의 영역'으로 대접 받아왔던 히말라야. 콧대높은 자존심을 내세우던 이 산의 신세가 요즘 처량하다. 산소통 등 최첨단 장비의 발달과 산악계의 상업화 영향으로 돈만 있으면 전문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오를 수 있는 산으로 그 가치가 내려가고 있어서다. 헬리콥터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는 관광상품도 생겨나고 있다. 최소한의 장비와 식량으로 히말라야 14좌를 무산소 등반한 카자흐스탄 출신의 산악인 데니스 우룹코(37·사진·이하 우룹코) 씨가 진정한 '산악 영웅'으로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달 19일 오후 대구등산학교의 초청으로 대구를 방문한 그를 월드컵경기장 내 인공암벽장에서 만났다. 산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얘기할 때면 마른 몸매와 온화한 인상과 달리 그의 내면은 큰 산을 품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다.
◆세계의 지붕에서 얻은 '절대 자유'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국내에서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여성 산악인인 오은선 씨를 포함해 4명이나 성공했다. 그러나 무산소로 그것도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면서 완등한 것은 세계 산악계에서도 드문 기록이다. 힘들고 어려운 고산 등정도 모자라 왜 힘든 무산소 등정과 새로운 루트 개발을 고집할까.
"짐이 많다보면 걱정이 많아지고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극소량의 식량 등 생존에 꼭 필요한 장비만을 챙겨갑니다." 그래도 유산소 등정이나 기업체의 후원으로 이뤄지는 대규모 등반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산을 오르는 이유가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장비를 선택하고 어떤 루트를 이용하는가도 등반가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등산 자체를 즐기고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첨단 과학장비에 의존하는 일부 산악인들에 대한 지나친 배려일까. 인터뷰 내내 우룹코 씨와 함께 했던 장병호 대구등산학교 교장이 부연 설명을 한다. "한국의 등산인들은 오직 오르는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과정이 아니라 성취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적잖은 국내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산 등정에 성공해 낭보를 전해오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인정을 못받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구등산학교에서 우룹코 씨를 초청한 목적도 한국 산악계의 등반 수준을 높이고 상업주의에 물든 잘못된 등반 관행을 고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남들보다 힘들게 등산을 하는 만큼 정상에 섰을 때의 느낌은 남다를 것 같았다. "흔히 말하는 정복감, 희열감보다는 그냥 산이 나를 허락해줬다는 데 감사할 뿐입니다."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 역경을 딛고 목표를 성취한 정복감, 대충 이런 대답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싱겁다.
◆'오은선 씨의 14좌 완등
그의 본심을 한 번 더 들을 요량으로 이야기를 보다 민감한 주제로 옮겼다. '오은선의 칸첸중가 완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역시 돌아온 대답은 평범했다. 그는 오은선 씨의 말이 사실이길 바란다고 했다.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며 몇 번 오 씨를 봐왔고 성실하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오히려 오 씨의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등반을 놓고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선정주의를 꼬집었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최초라는 단어에 목숨을 거는 것 같아요. 왜 최초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요." 오히려 진지하게 기자에게 되묻는 우룹코 씨의 모습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기자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산이 좋아서 산에 가야 산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남한데 보여주기 위해 산을 타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 않나요?" 우룹코 씨의 연이은 질문 공세에 질문에만 익숙한 기자로서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도 잠시. "산을 사랑하고 산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등반가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자 덕목입니다. 특히 상업주의와 지나친 경쟁심 때문에 산을 타는 것은 각종 안전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객이 바뀌어 기자가 우룹코 씨의 질문에 나의 등산 철학을 이야기해 버렸다.
그러나 우룹코 씨는 접대성 멘트(?)도 잊지 않았다. "몇 년 전 부산지역의 한 산을 오르다 등산객들이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하는 데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등산객들은 진정 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같았습니다."
문득 그의 등산 철학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조금 늦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지요. 속도나 정상 정복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오른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산은 언제든지 자신을 허락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의 편안한 표정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의 여유와 너그러움이 묻어났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여유. 그는 이미 8천m급 14좌를 무산소로 등정한 것보다 더 값진 삶의 가치를 얻은 것은 아닐까.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우룹코는 누구?…코카서스 산악서 자라며 8살때 첫 등산
"8살 때부터 지질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오르면서 산과 친해졌어요. 본격적인 등반은 13세 때 마을 산악회에 가입하면서 했고요." 우룹코 씨가 처음 등산에 발을 뗀 것은 8살 때부터다. 러시아 남부의 험준한 산악지대인 코카서스에서 자라 자연스레 산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이후 천식 치료를 위해 사할린으로 이주하면서 더욱 산을 사랑하게 됐고, 27살이던 2000년 에베레스트 산을 무산소 등반하면서 산악인으로서 이름을 내기 시작했다. 이때의 경험은 그를 안팎으로 자유롭게 했다.
"제 삶에서 처음으로 나 스스로의 등반을 계획할 수 있게 됐고, 나를 믿어 준 사람들의 신뢰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무엇보다 어머니께 한 달 동안 편안히 방문하게끔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제일 기뻤어요."
이후 우룹코 씨는 승승장구했다. 칸뎅그리에서 열린 속도등반대회에서의 입상을 시작으로 2002년 2월 마블월 동계 등반, 5월 23일 히말라야 로체 등정, 2003년 브로드피크 노멀루트, 이듬해 안나푸르나 노멀루트, 2006년 마나슬루 초등, 2007년 K2 북서릉, 지난해 마칼루 동계 초등 등 세계의 산을 모두 발 아래 두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오른 산만 400여 개, 높이로 따지면 63빌딩을 500번 오른 횟수와 맞먹는다. 산을 진정으로 사랑한 우룹코 씨였지만 그는 최근 '변심'을 했다. 등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 결혼까지 미뤄어 오다 두달전 부인 올가 씨와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14좌의 정상에 선 그에게도 남은 꿈이 있을까. 결혼까지 한 마당에 잠시 휴식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에베레스트 북면의 신루트 개발이 목표입니다. 이번 겨울 에베레스트로 향할 계획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힘주어 말하는 우룹코 씨. 산이 있는 한 그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최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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