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흉작에다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을 농작물 수확철을 맞아 매일신문 기자들이 경북지역 각 농산물 주산지들을 취재한 결과 농촌 들녘에는 농민들의 한숨만 가득했다. 하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농사라지만 올해는 이상기후에 병충해마저 기승을 부려 흉작을 기록했고, 가격마저 떨어져 농민들의 시름이 깊기만 하다.
◆쌀=올가을 쌀값 폭락에 수확량마저 크게 줄어 쌀 농가들은 한숨을 짓고 있다. 의성 안계평야 경우 쌀을 수확한 결과 수확량이 작년보다 20% 정도 감소했다. 여기에 올해 시중 쌀값은 작년에 비해 10% 이상 폭락해 쌀 농가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벼논 6만6천㎡(2만 평) 정도를 재배하는 쌀 전업농들에게 올가을은 최악의 상황이다. 쌀 전업농 경우 트랙터와 콤바인, 이앙기, 건조기 등 농기계 값만 해도 수억원에 달하는 데다 이들 농기계의 감가상각비와 유류대 등 농기계 운영비에 농기계 융자 상환, 농지구입자금 상환 등을 생각하면 농민들은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다.
이병훈(45) 의성 의로운쌀연합회장은 "올가을에는 생산량 감소와 쌀값 폭락으로 쌀전업농민들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며 "농지구입자금과 농기계 융자금 상환을 연기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농민을 살리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농협미곡종합처리장(RPC)들도 위기에 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의성 안계농협 RPC는 올가을 벼를 수확한 결과 문고병 등으로 쭉정이가 많아 생산량이 감소했다. 또한 미질 저하 등으로 도정 수율(벼를 가공해 쌀이 나오는 비율)마저 크게 떨어져 고민에 휩싸였다. 윤태성 안계농협 조합장은 "2009년산 쌀은 평균 수율이 73%에 달했으나 올해 햅쌀을 도정한 결과 수율이 70%를 밑돌고 있다"며 "농협도 어려움에 처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울상을 지었다.
올해 벼 수확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경북 1위 쌀생산지(재배면적 1만3천887㏊)인 상주에서는 수확량 감소에다 햅쌀 가격 하락 등으로 농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상주의 경우 쌀 수확량이 작년 8만4천248t에서 올해 7만4천712t으로 생산량이 11.3%나 줄었다. 생산량 감소에다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단체 등 쌀 생산농들은 ▷농자재 값 인상 등 생산비를 감안한 쌀값 보장 ▷조합원(생산자)이 원하는 물량에 대한 농협의 전량 매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과=이상 기후에 태풍, 병충해 등을 이겨내며 힘겹게 사과 농사를 지은 농민들은 요즘 허탈해 하고 있다. 사과 수확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유례없는 수확량 부진에다 '대과'(大果·알이 굵은 과일)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병충해 등 피해로 검은 반점이 보이는 등 사과 품질이 예년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다.
안동 길안면 권명진(67) 씨는 "어림잡아 예년에 비해 상품성 있는 사과가 50% 정도에 불과하다"며 "가격도 공판장에서 20㎏들이 1상자당 2만8천원 정도 한다고 하니 수확량 감소와 여름철 병해충 방제에 든 생산비 등을 따지면 손에 쥐는 게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임동면 사과수출단지에서 20년째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김현오(64·임동면 중평리) 씨는 "올해는 여러 가지 이상기온으로 굵은 사과가 없다. 그러니 전체 수확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가격도 낮게 받게 된다"고 걱정했다. 또 "사과 크기가 예년의 60~70%에 불과한데다 나무에 달려 있는 사과마저 반점이 생겨 상품가치가 예년의 50% 이하여서 올해 농사는 본전치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혀를 찼다. 설상가상으로 꼭지 부분이 썩는 등 상품성이 없는 사과도 수두룩한 실정이다.
◆감·대추=올해 상주곶감 값이 지난해 대비 20~30%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주시에 따르면 올봄 잦은 비와 냉해 등으로 인해 곶감용 감의 결실률이 떨어지면서 감 수확량이 지난해(1만8천430t)보다 20~30%가량 줄어 감값이 지난해 대비 50%가량 올랐다. 수확이 막바지에 이른 상주 떫은감의 공판가격은 20㎏들이 1상자에 상품 6만~7만원, 중품 4만~5만원, 하품 2만~3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40~50% 오른 것이다.
상주시 남장동 동이곶감 유선열(60) 씨는 "감 작황이 좋지 않아 작년의 절반밖에 곶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면서 "감값이 비싼 만큼 곶감 값이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최대 대추 생산지인 경산지역 대추 재배 농민들은 지난해에 비해 가격은 80∼90% 정도 올랐으나 수확량이 30∼40% 수준에 불과해 소득이 크게 떨어져 한숨 짓고 있다. 경산 자인면 김상보(56) 씨는 "우리 동네 40여 대추농가 중 한두 농가만 지난해 수준의 평년작을 보였을 뿐 대부분의 농가들이 지난해 수확량의 30∼40% 수준에 불과해 농약대, 건조비 등 영농비를 제하면 소득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땅을 빌려 대추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경우 올해 손해가 많다. 3천여 평의 밭을 450만원에 임대해 대추농사를 지었다는 이모(62) 씨는 "예년의 경우 14㎏짜리 500상자 이상은 수확을 했지만 올해는 흉작으로 160여 상자 정도에 그쳐 건조비와 농약·비료대 등을 제하면 인건비는 고사하고 손해 보는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청도지역에서도 평년 생산량의 절반도 건지지 못한 농가가 속출해 울상이다. 특히 주산지인 청도 매전면 일대 대추밭은 수확을 포기하고 내버려둔 곳이 곳곳에 눈에 띈다. 매전면 남양1리 이성희(55·산동대추연구회장) 씨는 "지난해엔 대추를 20㎏들이 800상자를 수확했으나 올해는 300상자에 그쳤다"며 "회원 농가 86명 중 수확을 포기한 농가가 수두룩하다. 농약값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피해가 많았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청도·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상주·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군위의성·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경산·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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