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여의도의 '銅臭(동취)'

'동취(銅臭)가 난다'는 말은 '돈(동전)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매사 돈, 돈, 돈 타령하는 사람이나 뇌물을 먹어 돈 냄새가 물씬 나는 권력자를 빗댈 때 쓴다. 뇌물로 관직을 사는 등 부패가 만연했던 후한(後漢), 정승 반열에 오른 최열이란 자가 아들에게 '내가 정승 된 뒤 세상인심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아버님에게 동취가 나서 백성들이 싫다고들 합니다'고 답한 데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천년이 더 지난 지금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동취가 진동하고 있다. '청목회' 후원금 수사가 시작되면서다. 물론 압수 수색당한 의원 수가 11명 정도고 의심받는 뇌물 액수도 고작 1천만~2천만 원 안팎이니 나라 뒤집힐 만한 건수는 아니다. 거기다 과거 국회의 동취를 한두 번 맡은 것도 아니고 웬만한 동취쯤엔 코끝도 실룩거려지지 않을 만큼 악취 면역이 생겨 있는 국민인 만큼 새삼 뇌물 돈 냄새 땜에 코가 불편하달 것도 없다. 그 정도 일에 50군데나 압수 수색해가며 법석 떨 것 뭐 있냐고 시큰둥해하는 여론도 없지 않다. 따라서 해당 의원들이나 야당 대표, 여당 정치권이 '검찰이 제 할 일 하려는 거겠지' 하고 법치를 기다리며 자기네 일(예산 심의)에나 열공했더라면 대충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거꾸로 가버렸다. 몸에서는 동취가 물씬 나는데도 입은 살아서 '국회가 유린된 날' '국회 유린이 계속되면 정국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 '입법권 침해' 운운하며 거품을 문 것이다. 적반하장이다. 지겹고 꼴사나워서라도 못 본 체하려던 민심을 오만한 입초사로 건드려 지탄을 자초했다. 눈 있고 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마디 안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청목회라면 청원경찰들의 단체다. 사회적으로 고소득층도 아니고 퇴직 공직자나 나이 들어가면서도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는 분들의 모임이다. 생계나 직무와 관련된 법이 좋은 쪽으로 고쳐지면 그나마 좀 더 나은 직무 환경을 얻어낼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는 약자다. 당연히 어떻게 하든 법을 득되는 쪽으로 고치고 싶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법을 만들고 고쳐주는 사람들은 여의도에 있다. 맨입으로 찾아가서 '법 고쳐 주세요'라고만 해도 재깍 고쳐주면 다행인데 아직 국민들 정서 속엔 우리 여의도는 그런 곳이 못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백성들이 말 안 해도 공부하고 연구해 가며 좋은 입법 해주는 모범적인 의원도 많지만 대세는 아직 2%가 부족하다. 그러니 맨입 아닌 딴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된다. 정치자금법 따져보기 전에 급한 마음이 더 앞설 수밖에 없다.

넉넉잖은 청목회원들이 십시일반 호주머니를 털어 모은 밑바닥 이유와 심정을 그런 바탕에서 생각해 보라. 열에 아홉, '국회의원에게 갖다 바치면(후원하면) 법이 잘 돌아간다'는 인식이 통념처럼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기름 바른 가죽이 부드럽다'는 속담의 이치에 끌린다는 얘기다.

'후원'이란 명목은 그럴듯하다. 투명하게만 운용하면 취지나 효율도 나쁠 것 없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처럼 '후원'이 '양두구육'(羊頭狗肉)으로 의심받아 검찰권이 동원되고 온 나라가 서로 물고 뜯는 꼴로 가서는 안 된다. 더욱이 선관위의 고발과 법원의 영장 발부에 의해 법과 정의를 지켜 나가겠다는데 국회 유린이니 입법권 침해 따위의 궤변으로 저항하는 것은 억지다. 검찰이 수사를 계속 하면 '정국 흐름(4대강 예산 심의 등)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것 또한 깡패 정치의 구태다.

의회 후원금 의혹은 앞으로 청목회에 이어 농협, 민노당 등으로 계속 확산될 모양이다. 여의도를 가죽으로 알고 기름을 발라야 된다고 믿는 비틀린 정서가 곳곳에 전염돼 있다는 얘기다. 국회의원들 몸에서 동취가 나야 법이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라면 망하는 나라다. 검찰은 국태(國泰)를 위해서라도 그런 거짓과 위선, 부패한 자가 거꾸로 큰소리치는 폐습을 가차없이 잘라야 한다. 과거처럼 중간에 겁먹고 칼집을 다시 닫는다면 동취는 검찰 몸에까지 배어든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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