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의 산골짜기 마을에서 자라, 대구로 유학 온 형제가 우리 사회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경북대에 재학 중인 쌍둥이 형제 권승우(24· 정치외교학과 4학년) 씨와 권승일(24·경영학부 2학년) 씨는 2008년부터 대구시 서구 일대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수학 점수가 늘 60점 이하이던 학생이 올해 중간고사에서 100점을 받아 부모와 두 형제를 기쁘게 하기도 했다.
산골짜기 가난한 마을이 고향인 두 형제는 온 집안이 힘을 합쳐 어렵게 대학에 진학시킨 학생들이다. 늘 빚에 쪼들리는 부모님은 형제의 학비를 댈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수능시험을 마친 직후부터 대학 입학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장의사 보조 일까지 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도 입학금을 대기에는 부족해 부모와 삼촌, 고모까지 나서서 십시일반으로 입학금을 만들어 형제를 대학에 입학시켰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형제는 생활비와 다음 학기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과외를 받겠다는 학생이 점점 늘어나 한 사람이 9명씩 과외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무렵 형제는 회의를 느꼈다.
"공부밖에 몰랐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짬을 내서 고아원 아이들을 목욕시켜주고 함께 놀았습니다. 그런데 한창 과외를 하던 당시 우리는 마치 돈을 벌기 위해 대학에 온 것 같았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08년 여름, 형인 승우 씨가 먼저 동사무소엘 찾아갔다.
'저는 경북대학교에 다니는 권승우라고 합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료 과외를 해주고 싶습니다.'
동사무소에서 가난한 청소년을 추천해주었고 승우 씨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당시 군 복무 중이던 동생 승일 씨는 형의 이야기에 즉시 동의했고 제대하자마자 2009년부터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그렇게 함께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 중 절반 이상이 3년 내내 배우고 있다. 승우 씨와 승일 씨의 과외 중 50%는 자신의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한 것이고 나머지 50%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돕기 위한 활동이다.
두 형제의 무료 과외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공부를 가르쳐 달라는 신청이 접수됐다. 시간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선뜻 나서는 대학생이 없었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앞에 둔 터라 모두들 성적과 '스펙' 관리에 바쁘다는 반응이었다.
승우 씨와 승일 씨는 "대학마다 봉사 점수가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요구하고요. 그래서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하는데 대부분 스펙을 쌓는데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인재인 대학생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어려움은 오히려 기회가 된다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격려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중·고교 시절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매점 한번 갈 수 없었어요. 그때는 그게 부끄러워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부하기 바빠서'라는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도 늘 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실력이 늘었습니다. 가난이 미래를 꺾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공부한 끝에 두 형제 모두 3년 전면 장학생으로 포항 대동고에 입학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승우 씨와 승일 씨는 "대학생들 사이에 개인주의가 너무 팽배해 있다" 며 "함께하는 문화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동참할 대학생들의 참여를 기다린다고 했다. 010-7631-2250(권승우).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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