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빈곤의 늪으로 빠져드는 영세 자영업자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 이런 현상은 비단 슈퍼마켓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대형 마트 내 서점과 화장품 코너를 비롯해서 임대형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세탁소, 커피전문점 등이 독점적 수혜자로 인근 상권을 빨아들이고 있는 사이, 골목 상점들은 매출 하락에 힘겨운 하루하루를 나고 있는 실정이다.
◆자영업마저 할 수 없으면 뭘 먹고사나?
남들보다 이른 퇴직을 하고 아내와 함께 화장품 가게를 시작한 김모(52) 씨. 대형마트 주변이 유동인구가 많아 매출이 잘 오를 것이라는 그의 계산은 완전히 착오였다. 대형마트에는 중저가 브랜드에서부터 화장 관련 소품들까지 다양하게 전시가 돼 있다 보니 아무리 많은 인구가 오고 가도 그의 가게에 들러 화장품을 사는 사람은 드문 실정이었던 것. 1년여를 버티던 끝에 김 씨는 인테리어 비용 등 1억원만 고스란히 날리고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아야 할 상황이 됐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땅히 먹고살 방편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숨만 내쉬고 있다. 식당도 대형마트 내 푸드코트가 독식하고 있고, 바로 옆에 문을 열고 있는 세탁소마저도 대형마트 때문에 늘 인건비도 못 건진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어디 가서 다시 취직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 보니 자영업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대형마트와 SSM의 숫자가 워낙 늘어나 동네 곳곳을 점령하면서 이제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어디 가서 날품팔이라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건지 앞이 막막하다"고 했다.
피자가게를 하던 이모(44) 씨 역시 업종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가뜩이나 고급 브랜드 피자와의 경쟁에서 저렴한 가격 외에는 경쟁할 수 있는 요소가 없었는데, 이제는 이마트 피자까지 가세하면서 '싼 가격'이라는 매력마저도 사라진 것. 오히려 "왜 동네 피자를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파느냐?"고 욕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그 역시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씨는 "뭘 해서 먹고사나 하루 수백 번을 되물어 보지만 답이 보이질 않고 애꿎은 담배만 늘고 있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겪은 이후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한데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까지 겪으면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조기 퇴직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마지막 보루'로 생각되던 자영업마저 자리 잡기가 힘들어지면서 사회 저소득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것.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대형마트들은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늘어나는 소매업 매출은 대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는 대형마트가 몽땅 쓸어가고 있는 상황인 것. 올 소매판매액은 작년 대비 3.5% 증가에 그친 데 비해 대형마트는 10.6%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재래시장과 기타 소매점포는 마이너스다. 결국 재래시장과 소규모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대기업의 배만 불리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 경쟁력 강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형 유통자본들은 '유통경쟁력 강화를 통해 신규고용을 창출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보답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2006년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센터가 작성한 '대형유통점(대형마트) 진출이 지역중소유통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3개 늘어날 경우 중소유통업 연매출감소는 1천853억원으로 재래시장 약 9.4개의 매출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 출점으로 인한 유통업 관련 실직자 수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대형마트 신규출점으로 인한 신규고용은 약 1만8천800명인 데 비해 같은 기간 재래시장의 고용감소는 약 2만6천 명에 달한 것. 결국 7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이와 함께 고용의 질 또한 파트타임 증가 등으로 더욱 악화됐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인접지역 물가는 다소 내려가지만 지역 전체상권이 몰락함에 따라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물가가 상승, 싼 가격의 제품을 공급해 물가가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대형마트 면적이 10%가 증가하면 전체 물가는 0.37% 상승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구 경제는 갈수록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구는 변변한 대기업 하나 없이 유독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기준 대구의 자영업자는 74만6천 명으로 전국 자영업자의 12.5%를 차지했다. 전국의 취업자 중 대구의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0.5%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자영업자가 그만큼 많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자영업 관련 종사자의 비중이 대구 25.8%, 경북은 33.3%로 전국 평균(25.3%)에 비해 높다.
하지만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대구와 경북의 자영업 종사자 평균 임금은 150만8천원과 165만8천원으로 지역 평균 임금의 81.8%, 76.4%를 차지하고 있지만 근로시간은 오히려 3~4시간이 더 긴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전국 평균 임금과 비교해서는 69.9%, 76.8%에 불과해 대구지역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턱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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