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식 안주는 문화욕구 충족입니다."
소폭(소주 폭탄주)·양폭(양주 폭탄주)에 '부어라! 마셔라!' 분위기에서 주문하는 소시지야채볶음이나 골뱅이와 사리, 노가리와 땅콩보다 '문화'라는 안주,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가. 과일이나 샐러드 안주보다 더 좋은 이 '문화'라는 이름의 근사한 안주를 차리려는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긍정적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확산되고 있는 흐름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대구광역시연합회(이하 대구예총)는 이달 중 대구지방법원과 예술소비운동 MOU를 체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여자 판사들이 현격하게 늘어나고 술판은 가급적 지양하자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기 때문. 사실 여판사들의 문화적 욕구는 깊이도 있고 크다.
연말연시 역시 각종 송별회, 송년회 모임도 대구웨딩연합회(회장 박경애) 직원과 관계자들처럼 이브닝 드레스, 턱시도 차림의 파티 문화도 등장하고, 대구의 크고 작은 기업들도 부서별로 함께 문화공연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으로 흥청망청 술판을 대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화를 안주로 올리고 있는 우리 지역의 기분 좋은 움직임들을 따라가 봤다. 취재하면서도 기자가 괜히 고상해지는 기분마저 느낄 정도였다. '놀랍다! 영어로 원더풀(Wonderful)!'
◆경북도 교육청 여직원과 함께
경상북도 교육청 여직원들이 연말 모임에서 문화 안주로 선택한 것은 시쳇말로 돈 좀 드는 공연이었다. 올해 대구 공연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문화욕구는 대단했다. 임신부들까지 기어이 '오페라의 유령'을 보겠다며 참석했다. 경북교육청 교육행정직 여직원 34명 가운데 27명이 참석했으며, 매월 내는 1만원 회비에다 특별 회비 3만원까지 따로 냈다. 그래도 다들 표정이 설렌 듯 싱글벙글이다. 특별한 욕구 충족의 기회를 잡았으니, 마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랄까.
이들은 단체석 15% 할인까지 받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간단하게 햄버거와 콜라로 저녁을 대신하고 공연 시작 30분 전에 기념사진을 찍고 삼삼오오 모여 공연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단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기획홍보담당관실의 엄갑영(37·교육행정 7급) 씨는 "2004년 이 모임을 처음 시작한 이래로 문화공연 관람으로 회식 모임을 대신한 것은 처음"이라며 "멋진 공연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은 먹고 노는 1차원적인 기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모임 총무인 박주현(30·7급) 씨도 "신세대 여직원이 많이 늘어난 만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모임도 변해가는 것"이라며 "내년에는 더 좋은 공연으로 교육행정 여직원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예총, '예술소비운동'
대구예총은 올 4월부터 '예술소비운동'을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 단체는 문화공연을 술 안주가 아닌 밥상 위에 올리자는 운동을 전개하는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순수함 그 자체로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회원은 579명이지만 한번 나서면 그때 공연은 매진, 만석(滿席)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특히 대구예총은 이 운동의 순수성에 그 무게를 두고 있다. 상업성이 강한 비싼 뮤지컬이나 오페라보다는 소극장 연극이나 발레·무용 등 객석이 많이 비는 공연을 '문화 안주'로 선택하고 있다. 회원들에게 회비도 걷지 않으며, 당회 공연에 해당하는 단체 티켓비만 내면 언제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 단체가 올해 나서서 힘을 실어준 공연은 연극 '마음을 여는 비밀번호 1224'와 '마술가게', 지역 창작 뮤지컬 '마돈나 나의 침실로' 등으로 회원들 덕분에 당회 공연은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더불어 각종 단체와 함께하는 문화 공연 보러가기 운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예술대학이 없어 삭막하다는 대구대(총장 홍덕률)와 문화 공연 함께 보기 협약(MOU)를 체결한 데 이어 이달 말에는 대구지방법원이 대구예총의 문화 공연 함께 보기 대열에 참가한다.
올 초 취임한 문무학 대구예총 회장은 "대구는 문화중심도시로서 충분한 저변을 갖추고 있다"며 "음악·미술·문인·국악·무용·연예·연극·영화·건축 등 10개 장르에서 8천 명에 이르는 문화예술인이 활동하고 있는 만큼 문화 공연이 좀 더 생활 속으로 다가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연말연시를 앞두고 이런 조언도 곁들였다. "술도 실컷 마시고, 운동도 하시고, 맘껏 즐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세요. 하지만 문화공연 1, 2편을 보는 것도 꼭 잊지 말고 하시길 바랍니다."
◆'문화 안주'를 널리 알리자
'문화'를 안주 삼아 지역민들에게 널리 퍼뜨리고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자는 운동이 지역에 널리 퍼지고 있다. 찾아가는 문화마당 행사가 대구문화재단과 (사)한국문화공동체 B.O.K(Beauty Of Korea) 등을 통해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들고 있다.
(사)한국문화공동체 B.O.K가 지난달 17일 주최한 풍경소리 축제는 마당의 특징을 살린 야외 공연이다. 자연과 어울리는 공연예술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가을에 개최, 더 많은 시민들이 전통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자연에서의 휴식과 자녀교육 측면, 문화 향수의 측면을 함께 충족할 수 있게 해 보는 공연에서 소통의 공연, 참여형 공연작품으로 전통예술 이해와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달 말부터 다음달 초까지도 좋은 공연을 이어간다. 이름하여 'Beat-A 예술단'. 지각쟁이 먹보 단원, 연습벌레 단원, 팀 내 유일한 홍일점인 절대 미모 단원, 카리스마 팀장 등 개성이 강한 4명의 캐릭터가 모여 만드는 코믹타악극 '상상' 공연을 선보인다. 강렬한 두드림, 연기자들이 펼치는 코믹한 해프닝, 관객과의 다양한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대구문화재단도 찾아가는 문화마당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남성중창단 '이깐딴띠'가 병원이나 불우시설 등 지역의 소외 계층을 찾아가는 공연을 펼쳤다. 대구문화재단 김중기 담당은 "지역의 문화욕구 충족에 문화재단이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찾아가는 문화마당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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