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골목상권

두 남녀가 우연히 채팅룸에서 만나 e-메일을 주고받으며 삶과 문학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관심을 나누며 애정을 키워간다. 여자는 골목서점의 주인이었고, 남자는 대형 체인서점 사장이었다. 대물림한 서점을 운영하며 오랜 세월 골목을 지켜온 여자는 고객들의 이름과 취향은 물론 안팎의 일상사까지도 훤히 꿰고 있다. 골목서점은 하나의 작은 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 골목에 대규모의 체인서점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린다. 여자는 서점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그 체인서점의 사장이 바로 그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갈등에 빠지는데….

이 이야기는 미국의 유명배우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출연한 'YOU'VE GOT MAIL'이란 영화의 줄거리이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마가렛 설리번이 주연한 1940년대 고전 '모퉁이서점'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도시의 오랜 명소인 골목서점 주인과 초대형 체인서점 사장의 다툼과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문제는 이것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대구의 도심 골목을 수십 년간 지켜온 서점들의 운명이 그랬다. 대구 도심과 큰 도로변에서 성황을 이루었던 숱한 서점들은 이제 20세기의 전설로만 남았다.

골목서점이라고 남은 것이라곤 학생들 참고서나 파는 문방구형 서점이 고작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는 골목상점마저 같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대형마트 하나 들어서면 주변 1㎞ 골목상권이 초토화되고, 동네가게 매출이 반 토막 난다고 한다. 시골 중소도시까지 대형마트가 문어발식 확장을 하면서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골목상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기업형슈퍼마켓(SSM)의 무분별한 진출로 전국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편리성과 세일이라는 유혹에 빠져 대형서점과 대형마트를 들락거리는 동안 우리 이웃에 있던 수많은 모퉁이서점과 골목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골목 안에서 맴돌던 쌈짓돈마저 거대 자본이 훑어가고 말았다.

잃어버린 것이 그뿐일까. 토종서점과 골목상점의 몰락과 함께 한 시절을 풍미했던 문화풍속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도시의 정감 어린 골목문화가 사위어 가고 있는 것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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