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 성적이 대체로 많이 떨어졌다는 기사를 보다가 문득 지난여름 진학진로박람회에서 내 직업에 대해 특강한 일이 생각났다. 자신의 진로를 두고 한창 고민하는 시기에 있는 우리 청소년들이 너무나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주시하는지라 좀 더 많은 걸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 친구들에겐 자신의 인생에 있어 어떠한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기에 속눈썹 위로 땀이 마구 흘러내려도 무시하고 나의 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다. 내가 이렇게 나의 일을 사랑했었나 싶을 만큼 해 줄 얘기가 얼마나 많은지….
강의를 마치고 어느 학생이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면 공부 잘해야 하나요? 제가 공부를 잘 못해서요"라고 질문했다. 아차 싶었다. 이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사실 나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난 그들이 진정 먼 길로 돌아가지 않도록 내가 겪은 시행착오만큼은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우물안 우리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또래들과 경쟁을 해야 하기에 더 큰 무대에서 신나게 놀아봐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 말이다. 진정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상상할 수 있도록 발품을 팔아 움직이고 또 움직여야 한다고.
이번에는 아이들을 대신해 선생님께서 질문을 던졌다. "돈은 많이 버나요?" 패션이란 말 그대로 상업예술인지라 자신과 궁합만 잘 맞으면 돈도 따라올 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물론 따라오는 돈의 정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분명 개인의 만족도가 다를 테니까.
연예인도 아닌데 패션디자이너란 이유로 꽤나 많은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내려오는데 몇몇 아이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순간 깜짝 놀랐다. 흔히들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를 마치고도 학원 시간에 맞춰 로봇처럼 지내느라 자신의 진로조차도 엄마들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진정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 시간의 만남에도 이렇게까지 준비해서 다니는 아이들이 있구나 싶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한 자리에 서서 30분이 지난 줄도 모르게 얘기꽃을 피웠다. 다리에 쥐가 살짝 났지만 참았다. 아이들의 눈을 보며 이야기의 맥을 끊을 수가 없었다. 아직은 나도 터널 속에 있는 듯하지만 나는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 미래의 멋진 후배들에게 굵고 단단한 동아줄이 되고 싶다. 땀 뻘뻘 흘려가며 한 얘기들이 그들에게 나중에 꼭 다시 생각나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힘든 순간이 와도 극복할 수 있는 끈기를 지니길 바란다.
김건이<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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