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무엇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댐즐'(오토릭샤 이름)을 지나치는 차량이 증가했다. 화물차도 점점 많아졌다. 도로가 넓어졌고, 차들은 이를 만끽이나 하듯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그리고 잠깐 사이 풍겨 오는 악취. 오직 댐즐을 등록시켜 보겠다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전혀 탐탁지 않은 델리까지의 여정이었다.
◆'고생 끝에 낙'은 없었다
델리 시내 주행도 만만치 않았다. 틈만 있으면 오토릭샤와 오토바이가 끼어들었다. 상세지도를 틈틈이 참고하며 길을 찾았건만 전혀 엉뚱한 지점에 나타나는 샛길들 때문에 차를 돌리기도 수십 번이었다. 그러나 이미 900여㎞를 달리며 쌓은 경험 덕에 크게 주눅이 들지는 않았다.
이렇게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하며 델리에 재입성한 우리는 사흘 뒤인 화요일 담당자를 만났다.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한 그 담당자는 업무 담당자인 부하 직원과 상의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상주 주소지가 없는 외국인'이라는 똑같은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규범집을 한참 들여다봤지만 답은 없었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운용하는 상용차는 무조건 CNG/LPG를 이용해야 한다'는 법규만 확인했다. 디젤 엔진을 장착한 댐즐을 델리에서 등록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시등록증 만기일도 하루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 이런 붕어빵 답변을 듣기 위해 좁은 차 안에서 땀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먼 거리를 달려왔던가!
◆다시 기회가 오는가 싶었으나
인도인 친구들은 이 소식에 하나같이 "아니다. 여기는 인도다. 분명히 방법이 있다"며 포기 상태인 우리보다 더 열을 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데, 한 인도인 친구가 '알고 지내는 사이'라며 변호사를 소개해 줬다. 수렌더(Surender)라는 사람으로 그는 우리에게 "가능할 것 같다. 내가 길을 알아보겠다"며 안심시켰다. 손님인 우리를 위해 따로 수고비는 받지 않는다는 수렌더,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그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어 보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수렌더의 노력도 큰 성과는 없었다. ▷타인 명의 등록 이후 대여 형식으로 사용 ▷법원에 정식으로 소송 제기 등 2가지 안 가운데 전자를 택해 처리를 했지만 최후의 해결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차량 구매 서류 내용을 조정하기 위해 야간버스로 11시간을 달려 만디(Mandi)까지 갔다 오는 강행군을 했음에도 말이다.
하나를 해결했다 싶으면 다시 장애물이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델리에서의 체류 기간은 어느덧 1개월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인도 비자가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리아(아내)와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댐즐을 처리하자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여전히 등록을 마친 뒤에나 가능한 일. 우리는 각종 조건을 따져본 뒤 수렌더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일단 델리를 떠나기로 했다. '인도인은 믿을 수 없다'고 말을 하지만 그동안 수렌더가 보여준 선의를 믿기로 하고 말이다.
과연 언제 해결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수렌더는 그래도 항상 그랬듯이 "걱정하지 마라. 곧 해결하고 좋은 가격에 팔아 주겠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아쉽지만 소중한 기억들
현재 시점에도 오토릭샤 등록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다. '곧 해결될 것 같다'는 소식이 한두 번 들렸을 뿐 '됐다'는 답은 아직 못 받고 있다. 이제 그냥 '버린 자식'처럼 기억에서 일단 제쳐 놓은 채 살고 있다. 생각하면 분명 아쉽고 아까운 시간들. 하지만 델리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기에 이는 어느 정도 상쇄가 된다.
수렌더는 변호사로 우리의 문제를 처리해 주는 입장이면서도 우리를 자신의 '손님'(인도에서 '손님은 곧 신')으로 대했다. 휴게실로 쓰는 공간을 우리가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해줬다.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하는 것은 물론 가족·친척과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줬다. 친구들과의 대화 자리에도 우리를 끼워주웠다. 자신의 출장 업무에도 대동, 델리의 법원 구경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아그라(Agra)의 타지마할(Taj Mahal)까지 운전사를 자청했다.
소탈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성격에 인도 사회의 실상에 대한 정직한 의견도 들려주었다. 자신은 10여 년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버리고 부모의 뜻에 따라 난생 처음 본 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후배들은 더 나은 결정을 할 것이라는 생각, 변호사들의 업무 중에 하나가 담당 공무원과 뇌물 수준을 협의하는 것이라는 얘기, 담당 부서 간 소통이 전혀 안 돼 도로 관리나 위생 상태가 엉망이라는 점 등 인도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경청했다. 인도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카우치 서핑(Couchsurfing·여행자에게 무료 잠자리를 제공하거나 만남을 통해 인적 교류를 넓히는 세계 네트워크)을 하며 알게 된 가우탐(Gautam)과 푸자(Pooja)를 통해서는 인도 상류층들의 생활을 잠깐 엿보는 기회도 생겼다. 수년째 개인 교습을 하며 인도에서 살고 있다는 한국인 여성을 통해서는 인도인과 전혀 섞이지 않는 것을 자랑한다는 일부 교민들의 이해하기 힘든 행태에 대해 듣기도 했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인도의 성장세를 목격한 것도 인상에 남는다.
이쯤 되면 두 달간의 '오토릭샤 여정'은 반쯤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오토릭샤 덕에 얻어 마신 공짜 '짜이'(Chai. 인도식 밀크티)도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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