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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토크 (5)] 일렉트릭 기타 열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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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밴드의 등장과 앰프기타 시대

로큰롤의 시작을 선언한 일렉트릭 기타는 록밴드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는다. 영국의 경우 1968년 시기 최고의 기타리스트들이 배출되고, 미국은 1967년 과 1969년 을 거치면서 일렉트릭 기타가 대중음악의 상징으로 등극한다.

한국에서 일렉트릭 기타의 전성기는 미8군에서 빅밴드의 퇴조와 '20세기 대중음악 최대의 센세이션'으로 불리는 로큰롤의 등장 시기부터다. 1966년부터 베트남전 파병이 본격화되고 한반도에 주둔하던 미군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면서 미8군 쇼시장이 축소되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 로큰롤이 유행하면서 빅밴드의 필요성이 사라지게 된다. 빅밴드의 자리를 대신한 쇼편성 악단을 라고 불렀는데, 처음부터 앰프기타로 불렸던 일렉트릭 기타가 주인공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관악기 중심의 편성에 앰프기타가 더해지는 모양새가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로큰롤의 유행은 앰프기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주로 관악기 주자가 악단장이던 캄보밴드도 기타리스트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 시기를 이끄는 선구적인 인물 4인방이 있는데 , , 그리고 이다. 앞의 세사람은 모두 자신의 악단을 이끌었고 은 이 이끌던 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앰프기타 4인방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나름대로 역할을 남긴다. 는 속주 기타의 달인으로 후배 기타리스트들에게 영향을 줬고, 은 , , 같은 그룹사운드를 후원하면서 작곡가로 변신한다. 특히 1970년대 중반 록이나 재즈에서 트로트 고고로 전향한 , , , 등은 의 지휘 아래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은 , 을 만들면서 한국록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 특히 나 풍의 본격적인 록밴드는 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되고 연주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의 우상이 된다. 마지막 한사람 의 행보가 특이한데, 은 서울 청계천 5가에 음악학원을 만든다. 은 미8군 무대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주로 찾았는데, 의 , , 의 , 의 그리고 도 이 학원 출신이다. 또 기타 교본을 만들기도 하는데, 1980년대까지 은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기타 키드들의 필독서기도 했다.

한국 대중음악은 몇 번의 혁신적인 과도기를 경험하면서 변화해 왔다. 서양음악 자체의 유입이 혁신을 가져오기도 했고 몇몇 천재적 음악인들에 의해서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의 악기가 음악을 변화시킨 경우는 일렉트릭 기타가 최초이자 유일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선구적인 기타리스트들에 의해서 가능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이들이 우선 헌액되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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