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30여년 경찰생활 근간은 고향 경주의 화랑정신"

"어릴 때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다. 경찰은 우리 국민을 지켜주고 보호하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경찰관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찰이 된 건지도 모른다. 제복 입은 경찰이 멋있게 보였다. 군에 갈 때도 전경으로 복무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찰 간부후보 시험을 봤고 그때부터 경찰은 천직이었다."

김석기(56) 전 서울경찰청장을 만난 건 KTX 열차 안이었다. 그는 고향인 경주에 가는 중이었다. 경찰청장에 내정되는 등 30여 년간 경찰에서 승승장구하다 2008년 2월 용산 철거민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불운한' 경찰총수의 근황부터 물었다.

"미국 보스턴대학에 가서 1년여 동안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미국 경찰은 법질서 확립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공부하고 돌아왔습니다. 일본은 유학 생활도 하고 주재관을 지내는 등 7년을 있어 잘 알고 있었지만 미국 경찰은 전혀 알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만사 제쳐두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미국에 머물면서 뉴욕 등 각 지역 경찰관서를 방문, 현지 경찰들과 교류를 했고 보스턴대학과 하버드대학 등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연도 했다. 그는 "이제 다시는 경찰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경찰은 소중한 경험이다"며 "앞으로도 경찰 조직 발전과 법질서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용산 사태에 대해선 할 말이 많았다. 아직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경찰청장에 임명됐으면서도 총수 자리에 오르지도 못한 채 사퇴한 직접적 계기였다는 점에서라도 그는 용산 사태를 잊지 못한다. "용산 사고의 본질은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죽게 한 게 아닙니다. 범법자들이 경찰을 죽이기 위해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졌고 거기에 불이 붙으면서 발생한 화재로 경찰이 죽고 본인들도 사망한 것입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전국철거민연합회 등 외부 세력이 빌딩을 불법 점거, 이웃집에 화염병으로 방화하고 지나가는 차량에도 무차별적으로 화염병과 염산병까지 던져 무고한 시민들이 언제 참변을 당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다"며 "경찰은 당연히 선량한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용산 사태 후 20여 일 만에 사퇴하게 된 것은 책임을 진 것이 아니라 야당이 자신의 사퇴를 고리로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회가 앞장서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야당은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하자 '나 하나 때문에 국회가 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퇴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하긴 김 전 청장은 야당과 촛불집회를 주도한 세력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과격 양상으로 흐르던 2008년 7월, 그는 경찰청 차장에서 서울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겨 수도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게 된다. 그는 전임자와 달리 촛불시위자들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는 "김석기 하면 용산만 떠올리는데 촛불폭력시위를 정리하고 서울의 치안을 확립하고 나라를 지킨 것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가 대한민국 경찰의 마스코트인 '포돌이'와 '포순이'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수서경찰서장 시절 그는 우리 경찰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마스코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는 경찰 마스코트 개발에 나섰다. 국민의 말을 큰 귀로 듣고 미소를 띠고 있는 친절한 포돌이·포순이는 만화가 이현세 씨가 그의 부탁으로 만든 것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 "현직에 있을 때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일했는데 다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든 것을 바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경주를 자주 찾고 있다. 경주 안강에서 태어나 계림초교와 경주중을 다닌 그에게 경주는 화랑도 정신을 온몸에 배게 한 원천이었다. 그는 "신라의 화랑정신을 30년 경찰 생활의 근간으로 삼았다"며 "경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화랑 같은 자세로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대륜고와 영남대를 졸업한 그는 동국대에서 대학원을 마친 뒤 최근 용인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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