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구史 한 획 긋고 퇴임한 김응용 사장

삼성을 '야구 名家'로 만든 우승 청부사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 구단 사장에 올랐던 김응용 전 사장은 이제 고문으로 야구인생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매일신문자료 사진.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 구단 사장에 올랐던 김응용 전 사장은 이제 고문으로 야구인생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매일신문자료 사진.

3일 단행된 삼성 그룹 사장단 인사에 맞춰 퇴진한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69) 전 사장은 '최고' '최초'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한국 프로야구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20대에는 국가대표 4번 타자, 30대에는 지도자로 변신, 프로야구 출범 이후엔 한 번도 이루기 어렵다는 한국시리즈 정상을 10번이나 밟았다. 그리고 남들이 은퇴할 나이인 60대, 국내 최초의 운동선수 출신 1호 CEO에 오르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다.

185㎝, 95㎏의 거구만큼 김 전 사장은 2001년 감독 부임 후 사장 재임 6년까지 10년간 삼성구단에 굵직한 흔적들을 남겼다. 전후기 통합우승을 한 1985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삼성에 '1인자'의 기쁨과 감격을 안긴 건 대표적 업적이다. 그리고 3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쾌거를 일궈내며 2000년대 '명가' 삼성의 중흥을 이끌었다.

"김응용 사장님요? 글쎄요." 6년 재임기간, 어떤 분이었는지 묻자 삼성 프런트 한 직원은 한참을 뜸들이다 "간섭을 많이 안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국내 스포츠를 통틀어 선수 출신으로 구단 최고 경영자에 오른 분의 평가치고는 뭔가 허전했다. 그러나 이것만큼 김 전 사장을 대표할 말도 없는 듯했다. 워낙 과묵하기에 잔소리하는 걸 즐기지 않았지만 선수와 프런트에 신임을 주며 구단을 꾸려온 게 사장 김응용의 스타일이었다. 특히 시즌 중에는 절대 더그아웃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내가 감독 때 야구장에서 사장 얼굴만 보면 꼭 지는 징크스가 있기도 했지만 조용히 구단과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게 나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50년간 입었던 유니폼을 벗고 63세에 양복으로 갈아입은 김응용 전 사장의 확고한 철학이었다. 빼어난 성적 못지않게 사장 재임기간 '성공시대를 구가했다'는 평가는 믿음 경영에서 우러나온 안정적 구단 운영에서 비롯됐다. 권오택 홍보팀장은 "사장 부임 후 과묵함을 벗고 동장부터 군 사단장까지 팬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훑고 다녔다"고 했다. "침체된 프로야구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관중 동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취임 당시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구단의 스타선수들을 각종 공공기관의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등 적극적 마케팅 전략을 펼치며 야구 활성화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각 구단 사장들이 참석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서 기업인 출신 사장들을 상대로 야구인으로서 오랫동안 현장에서 느낀 문제점과 개선방향 등을 밝혀 새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를 가장 완벽하게 포장할 수 있는 말은 '우승 청부사'다. 항상 정상 언저리에서 맴돌았지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던 삼성을 정상에 올려놓으며 구단과 대구팬들에게 쾌감을 맛보게 한 장본인이었다는 점은 최고의 업적이었다.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삼성은 1983년 부임부터 1997년까지 해태(KIA의 전신)를 9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서게 한 우승제조기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당시 감독 최고 대우인 5년간 13억원의 거금을 내놓았다. 2001년 삼성 옷을 갈아입은 김 전 사장은 그해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뒤 이듬해 정규시즌 1위 후 한국시리즈에서 LG의 추격을 뿌리치고 해묵은 삼성의 한을 풀었다.

2004시즌 후 감독직을 그만둘 때까지 1천476승을 거둬 통산 최다승의 깨지지 않는 기록을 가진 김 전 사장은 최다패 기록(1천138패)도 동시에 갖고 있을 만큼 시련도 겪었다. 김 전 사장은 재임시절 트레이드 불가로 결정났던 히어로즈 왼손 투수 장원삼을 데려오기 위해 '현금 30억원 트레이드' 사태를 빚으며 비난을 받았다. 또 소속 선수들의 인터넷 도박 사태로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연임에 성공하며 삼성그룹의 여전한 신뢰를 받았다.

1951년 1월 4일(1·4후퇴) 평안남도 평원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피란지 부산으로 내려온 10살 소년은 중학교 때 야구를 시작했고 선수시절, 코끼리가 비스킷을 받는 것처럼 공을 날름날름 잘 받아 '코끼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선수와 감독을 거치며 한국 야구의 전설이 된 김 전 사장은 이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평소 답답해 하던 넥타이와 양복을 벗게 됐다. 하지만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한발 비켜 고문으로 물러서게 됐지만 여전히 야구 발전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아울러 평소 관심을 가져왔던 유소년 야구 육성에도 끊임없는 애정을 이어갈 계획이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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