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중심, 구미!'를 향해서 30회에 걸쳐 소개된 '구미(龜尾)를 구미(口味) 당기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젠 구미시도 사람으로 치면 생활이 안정되어가는 성년기(成年期)에 접어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70년대 낙동강 중류에 위치한 작은 마을 구미읍(龜尾邑)을 중심으로 계획적인 내륙 수출공업단지를 조성하고, 공장이 들어서면서 구미시로 승격되어, 1980년대 300여개 섬유와 전기· 전자업체에서 5만여명의 근로자들이 산업전사(産業戰士)로 미래의 꿈을 향해 정열을 쏟을 때만해도 구미는 안정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1983년 전국적으로 실시된 주민등록 일제갱신 결과를 분석해보니 구미시민은 전국의 215개 시· 군· 구로부터 기회를 찾아 전입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중학교를 갓 졸업했을, 아직 앳된 티가 채 가시지 않은 근로자로부터 일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찾아 나서는 중년을 넘긴 노동자들까지 구미는 하루하루 다르게 변해가는 역동적인 도시였고, 젊음과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구미의 오늘은 전국 각지로부터의 인력 유입과 구미 수출공단의 끊임없는 변신의 결과라 여겨집니다.
구미 수출공단에도 성장통(成長痛)은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섬유와 전기· 전자 중심의 경공업제품들이 후발국가들의 추격으로 수출에서 경쟁력이 약화되고,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불리함이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구미시는 제3, 4공단을 추가로 개발해 새로운 동력을 공급하면서 IT산업으로 변신하였습니다. 규모면에서 커졌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아날로그 시대의 양(量)적 생산중심에서 고품질, 하이테크(Hi-Tech)산업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때마침 실시된 지방자치 행정구역 개편은 공단만이 있는 회색도시로 인식될 수 있는 구미시를 사람과 역사와 문화가 있는 생활공간으로 구미시를 발전시켰습니다. 금오산과 낙동강 사이에 들어선 공장과 기업체들로 대표되는 구미시의 본가(本家)였던 선산군의 역사와 문화가 더하여 구미를 균형 잡힌 도시로 완성시켜가고 있습니다.
'조선 인재의 절반이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절반이 선산에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선산군의 역사와 문화는 생산중심의 구미공단에 정신적 지주가 되고 문화의 날개를 달아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주말이면 금오산 기슭을 찾던 공단 근로자들의 활동범위도 넓어졌고, 사내(社內) 실업학교를 다니고, 근로복지회관에서 취미활동으로 경력을 쌓아가던 근로자들도 구미공단의 성장과 함께 구미시의 주축 세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구미를 더 구미 당기게 하는 사람들'의 저변에는 구미공단과 함께 많은 애환을 가진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초창기의 구미공단에 꿈을 안고 모인 사람들이 전국 곳곳으로부터 모였듯이, 이제 구미는 세계의 곳곳으로부터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내공을 기반으로 세계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끝없는 동력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고 세계로부터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어디가 되었든, 새마을운동의 창시자인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는 금오산 기슭 상모동에 그대로 있습니다.
현실을 중시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선진국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한분인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生家)가 있고,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철학이 배어있는 곳은 구미(龜尾)라는 사실이 구미시민들에게는 큰 힘이자 자랑입니다.
이제 인구 40만명의 구미시도 인근의 칠곡군과 김천시를 아우르는 지역중심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외적(外的)확장과 외부로부터 유입으로 얻은 동력(動力)을 자체동력(自體動力)으로 발전시켜야 구미(口味)가 당기는 구미시로 계속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구미(口味)가 당기는 구미(龜尾) 사람들'이야말로 '구미(口味)가 당기는 구미시(龜尾市)'를 만드는 든든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임광원(林光元) 울진군수는=1973년 대학졸업 뒤 서울의 초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1981년 제25회 행정고시 합격, 총무처 등의 근무를 거쳐 1983년10월부터 85년4월까지 구미시청에서 새마을과장과 시민과장을 지냈다. 구미근무시 철로변 녹화사업 등을 추진했으며 구미서는 처음으로 시민들의 출신지역을 분석, 역동적인 구미사람들의 활동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경북도 예산담당관·영덕부군수· 농수산국장·경제통상실장 등 경북도청 주요 부서를 거쳤으며,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고향 울진에서 군수에 당선됐다. 구미 공직생활에 대한 회상 등을 담은 책 '연어!왕피천으로 돌아오다', '오늘도 등대는 바다를 지킨다'를 썼다.
매일신문 경북중부지역본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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