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대구파티마병원 이비인후과 김성희 과장

연구의사로 매진했던 청각학, 난청수술 임상 접목 속속 성과

대구파티마병원 이비인후과 김성희 과장은 청각학을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청각학 분야의 선두 주자이다.
대구파티마병원 이비인후과 김성희 과장은 청각학을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청각학 분야의 선두 주자이다.

인터뷰 내내 기자는 '청각학' 강의를 듣는 학생이 돼야 했다. 대구파티마병원 이비인후과 김성희(45) 과장은 연구 논문을 설명하면서 수시로 "재미있나요?"라고 물었다. 전문적인 설명만 이어져서 지루할까봐 짐짓 걱정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그는 중이염, 이명, 어지럼증과 함께 보청기가 필요한 난청 환자들을 주로 치료한다. 하지만 그의 주 관심사는 청각학에 있다. 인터뷰 동안 몇 차례나 "청각학을 임상, 즉 환자 치료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 연구 중"이라고 강조했다. 환자를 돌볼 자신이 없어서 연구의사가 되려고 했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아닌 연구원으로

그동안 어떤 분야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는지를 묻자 김 과장은 대뜸 "디스코텍에 왜 40대가 없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디스코텍은 40대 이상 세대나 알아듣는 단어이고 요즘은 나이트클럽이라고 한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겸연쩍은 듯 웃어보였다. 아무튼 질문의 요지는 왜 시끄러운 음악이 쿵쾅거리는 곳에 40대들이 가지 않느냐는 것.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됐다.

김 과장은 2003년 9월부터 대구파티마병원에서 근무를 했다. 앞서 3년간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대에서 노화성 난청에서 중추 청각계의 노화를 연구했다. 그는 '노인성 난청'이라는 표현은 잘못됐다고 한다. 최근 연구결과 이미 20대부터 귓속 달팽이관이 아니라 중추 청각신경계의 노화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노화성 난청'이 올바른 표현이라고 말했다.

2000년 처음 미국에 갈 때만 해도 그는 이비인후과 의사가 아니라 연구원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환자를 대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미국에 가기 얼마 전 8살 남자 아이의 편도선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중 출혈 때문에 아이가 위태로워졌어요. 마침 다른 교수님의 도움으로 지혈이 됐습니다. 수술은 손재주가 아니라 엄청난 책임을 떠안는다는 걸 알게 됐죠."

그는 환자를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미국 연수는 임상의로서의 삶을 마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연구의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받는 무대였다. 연구지도를 맡은 프리시나 박사의 도움으로 2002년 첫 논문을 발표하게 됐다. '중추 청각신경계의 노화가 말초 청각기관인 달팽이관의 외유모세포의 노화에 선행하여 나타난다'는 내용. 즉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노화성 난청은 보청기만 사용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노화성 난청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아울러 중추 청각신경계의 역할 중 하나인 소음환경 속에서 신호를 이해하는 능력, 특히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정상 청력인에서 노화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연이어 연구했다. 그 결과를 2003년 2월에 미국 이비인후과 연구학회(ARO)에 발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들 연구에서 나온 결론이 바로 '40대가 나이트클럽을 싫어하는' 이유다. 달팽이관에 있는 외유모세포는 외부 소리자극에 반응해서 진동하는데, 지나친 소음이 오면 청각신경계가 외유모세포가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즉 주변 소음을 적절히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청각신경계의 노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소음조절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예외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 음악이 쿵쾅거리는 나이트클럽을 싫어하게 됩니다. 이유는 소음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옆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중추 청각신경계 노화에 대한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앞으로 연구가 진행되면 노화성 난청에 대한 개념도 차츰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 보청기만으로 난청 치료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전망이다. 김 과장은 아울러 '군대 난청'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다. 총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해지고 심한 경우 난청까지 오는 경우에 대한 연구다.

파티마병원으로 돌아온 뒤 그간 연구한 청각학을 여러 분야에 적용하고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게 된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신종헌, 여창기 과장님께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다시 귀를 치료하는 임상의로서 간단한 시술부터 복잡한 수술까지 곁에서 일일이 지도해주셨죠." 아울러 청력검사를 표준화해서 보다 체계적인 노화성 난청에 대한 자료도 수집했다.

◆청각학, 다양한 임상 적용 시도

신생아 난청에 대한 검사와 치료도 시작했다. 신생아 난청은 1천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난다. 과거에는 확진검사만 가능했다. 아이가 2, 3세가 되도록 소리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뒤늦게 병원에 찾아와 난청임을 진단받는 것. 하지만 소리 자극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뇌가 발달하는 시기를 놓치기 때문에 확진검사만으로는 신생아 난청을 해결할 수 없었다. 김 과장은 소아과와 협력해 신생아 난청 선별검사를 도입했다. 초기에 난청 여부를 판별해 그에 따른 치료법을 조기에 적용하도록 한 것.

"제게 난청을 진단받고 처음 인공와우 이식술을 시행한 아기는 경북대병원 이상흔 교수님이 수술을 해줬습니다. 이후 청각재활을 맡으면서 인공와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우리 병원에서 인공와우 이식술이 시행되도록 준비도 했죠."

안면경련 수술에도 청각학을 접목했다. "청각학이 임상에 접목될 수 있는 어떤 분야라도 시도해 보려던 시점에 안면경련 수술 후 한쪽 청력을 잃은 환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청각신경이 워낙 가늘어서 수술 중 자칫하면 끊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 병원 신경외과 강동기 과장과 함께 수술 중 청각을 모니터링하는 것을 정착시켜 2005년 이후 모든 환자에게 이를 시행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비인후과 의사였던 아버지(김경남)의 영향으로 의사가 됐고 전공도 선택하게 됐다. "당시 이비인후과 교수님들과 친분이 두터우셨던 아버지의 배경에 힘입어 여자 전공의가 드물었던 이비인후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것을 그나마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언제나 환자가 있었고, 그들의 아픔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제게 오는 모든 환자들은 스승이었고, 아픔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 '프런티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치료 후 합병증에서 자유로운 의사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환자들은 가슴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입니다. 그 상처를 안고 스스로를 갈고 닦아서 좀 더 성숙한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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