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 때문에 환자와 가족은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된다. 경제적 여유가 되면 1인실을 사용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명이 다할 때까지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녀야한다. 냄새 때문에 같은 병실의 환자의 비난에 불만을 가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천형(天刑)이라고 생각하면서, 죽음이 어서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송 할머니(75세)는 말기 자궁암환자였다. 암이 신장과 대장으로 심하게 전이됐다. 평온관에 올 때는 양쪽 신장으로 연결된 소변 줄과 인공 항문의 대변주머니를 배에 만들어 입원했다. 할머니는 마지막 의사인 내게도 대변주머니를 잘 보여주지 않고, 몸을 웅크리고 짜증만 내고 있었다. 빨리 신경과로 의뢰해서 치매검사를 의뢰했고, 섬망과 우울증에 대한 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가 며칠 지속되자, 할머니가 입원하신 303호에는 역겨운 냄새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먼저 입원한 두 분의 간암환자와 38세 유방암환자가 많이 힘들어 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치매는 아니셨고, 그전 병원에서도 냄새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퇴원하신 것 같았다. 입원 상담을 하러온 아들이 먼저 귀띔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입원을 거부할까봐 이야기를 아낀 것 같았다.
평온관에는 냄새나 섬망이 심한 환자를 위해 무료로 사용되는 2인실이 있다. 할머니를 그곳으로 옮겨야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미 사용하고 계신 환자와 가족의 허락이 필요했다. 2인실의 한 환자는 한 달 간 혜택을 받아서 양보를 해주셔도 되는데, 절대 방을 옮길 수 없다고 하셨다.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한 병동이므로,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먼저 한 달간 무료로 사용하신 2인실 가족에게 이제는 무조건 303호로 입원실을 옮기시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리고 송 할머니를 2인실로 옮기고, 안심시켜드렸다.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할머니는 비로소 자신의 몸을 주치의에게 보여주었다. 다행히 열심히 치료만 하면 냄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303호의 젊은 유방암 환자는 자신이 2인실에 가야하는 데 왜 늦게 오신 할머니가 가시냐고 병실에서 엉엉 울고 계셨다. 그녀는 이미 2인실도 경험했으며, 다른 병실로도 여러 번 옮긴 적도 있었다.
303호로 가서 살짝 문을 닫았다. "할머니가 2인실로 가신 후 너무 편해 하십니다. 모두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이 결정을 받아드리기 힘드시면 저는 송할머니를 선택하겠습니다." 말기암을 받아 드리기 까지 힘든 과정을 겪은 호스피스환자에게 끝까지 따뜻하게 하고 싶었는데, 상처가 되는 말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나도 말기 암이 와서 냄새 때문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 굉장히 많이 슬플 것 같았다. 오후 회진에는 303호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나왔다. 가짜와 진짜의 차이는 마음의 차이이다. 망설이면서 한 설득에 마지막 묵어가는 여관(호스피스어원) 주인의 진실을 느끼신 모양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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