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두세 시에 보는 세밑 쓸쓸한 풍경이란?'
기자는 직접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밑 풍경을 '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제를 정했다. 제목은 '비둘기 할머니의 노숙'. 주제는 왜 73세 할머니가 6, 7년째 동대구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지, 2010 여성 노숙자 스토리는 어떤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주인공은 73세 비둘기 할머니이고 기자와 사진기자가 연출을 맡은 셈이다.
개인적으로 취재와 학업차 서울을 매주 1, 2번씩 올라가는 기자는 자주 KTX 막차(오전 1시쯤 도착)나 새마을호 막차(오전 2시 30분쯤 도착)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리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내릴 때마다 가슴이 저민다. 2년째 매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자세로 자고 있는 이 비둘기 할머니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누울 수 있는 자리인데도 몸이 굽어진 채로 이불조차 없이 앉아서 자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까지 했다. '동대구역에 내렸을 때 그 자리에 그 할머니가 없으면 혹시 하늘나라(?).'
그 새벽 서구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비둘기 할머니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왜? 왜? 할머니가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세상을 사는데 약점(고령의 여성인데다 몸도 불편하고 가진 것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한 존재)이란 약점을 다 가져야만 했을까?
◆비둘기 할머니와의 첫 조우
지난주 역시 오전 1시쯤 동대구역에 도착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둘기 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그 자세로 주무시고 계셨다. 아니, 그런데 눈을 뜨고 있었다. 찬스였다. 다가갔다. "저기 할머니, 안 추우세요? 저는 신문사 기자인데 할머니를 도울 일이 없나 해서…."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니, 괜찮아요. 벌써 6, 7년 됐는데. 빨리 집에 들어가소." 의외의 밝은 표정에 기자는 용기를 냈다. 명함을 건네며 "할머니, 제가 다음 주에 만나러 올게요. 그때 얘기 많이 해주세요." "그려!" 할머니는 명함을 꼭 쥐고 다시 잠을 청했다.
첫 만남에서 알아낸 정보라고는 단 두 가지였다. 나이가 칠순이 넘었다는 것과 벌써 6, 7년째 동대구역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한계를 체감했다. 희망도 두 가지. 기자를 생각보다 경계하지 않아 안심할 수 있었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이다. 아! 또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다. 이 할머니는 매일 오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항상 잠을 청하는 이 취침 장소로 온다는 것이다.
◆두 번째 만남과 대화, '한발 더'
두 번째 만남은 기자가 일방적으로 잡았다. 어차피 다음 주에 보기로 했기 때문에 일주일의 한복판인 수요일(15일) 밤을 택했다. 당직 사진기자도 동행했다. '혹시나 할머니가 없으면 어쩌지?' 걱정도 하면서 밤늦게 취재를 하러 갔다.
오후 9시 30분쯤 도착하니 그 자리에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 동대구역 오른편 끝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달려가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할머니에게 얼굴을 디밀었다. "할머니! 저 알겠어요?" 실눈을 크게 뜨고 잠시 보더니, "아! 계산동 기자 양반 맞나?" "네!" 다행이었다. 명함에서 주소를 자세하게 봤나 보다.
편의점에서 빵을 고르고 있었기에 퍼뜩 취재 협조를 위해 기지를 발휘했다. 보름달 빵 1개와 꼬마 두유 1병을 사드렸다. 굳이 2천원을 주겠다는 이 할머니의 돈을 사양했다.
오후 9시 30분부터 10시 30분 사이. 할머니를 따라다니고, 그 취침 자리에 앉아서 1시간가량 대화하면서 알아낸 정보는 이 정도였다.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인지 매달 42만원을 동사무소에서 받아서 노숙하는 데 쓰고 있었다. 하루종일 동대구역 일대를 떠나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생활 패턴을 똑같다. 같은 곳에서 식사하고, 같은 곳을 배회하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잔다. 목욕이나 외출은 생각지도 못한다. 옷도 누군가 준 외투를 입고 있었다. 허리가 심하게 굽었고, 다리도 아프다. 그렇지만 본인은 정작 '난 건강하고 지낼 만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동대구역에선 '비둘기 할머니'로 통해
할머니는 이름을 알려 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알아도 밝히기 힘든 상황이다. 다만 할머니 부모의 고향이 경북 고령이며 본인은 대구 달성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은 어렵게 할머니의 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있다는 주변 얘기에 대해서도 본인은 정작 과거만큼은 입을 떼지 않았다.
오후 10시쯤 역무원이 기자에게 다가왔다. "동대구역 취재를 하러 오셨습니까?" 할머니를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잠시 역무과장에게 함께 보고를 하러 가자고 했다. 가서 과장에게 설명하고 할머니에 대해 물으니, '아! 그 비둘기 할머니'라는 별명이 튀어나왔다. 생각했다. '아! 여기서는 비둘기 할머니구나!'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묻자, "햇살이 비치는 오후 시간이 되면 할머니는 역 밖으로 나가 비둘기에게 과자 부스러기나 음식물을 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는 언제나 반복되는 일과이자 매일 보는 풍경"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도 알아냈다. 2, 3년 전부터 동대구역에 여자 노숙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현재 4, 5명의 여성 노숙자가 동대구역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비둘기 할머니를 취재하던 중에도 편의점 인근에서 또 다른 여성 노숙자를 만날 수 있었다. 겉으로 봐선 모른다. 모피 코트에 제법 괜찮은 가방을 들고 다니기 때문. 하지만 역사 바닥에서 큰 사발면을 먹고 있었다. 기자가 말을 걸자, 다짜고짜 "전 아니에요. 손님이에요. 정상적인 손님이에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편의점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저분도 이곳에서 생활하는 여성 노숙자 중 한 분"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정신적인 지체나 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비둘기 할머니의 단출한 소품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14, 15일, 비둘기 할머니에게는 노숙자들에게 그 흔하디 흔한 라면 박스나 침낭 모포도 없었다. 다만 다리를 걷어서 자주색 내복을 입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앉은 채로 잠을 청할 때 옆에서 보니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는 것이 아니라 선잠을 청하는 것이 아닐까?'
또 신기한 것을 관찰했다. 목욕을 하지 않아서일까, 피부가 시커멓게 굳어 있었으며, 가려움을 느낄 정도를 넘어선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눈에 띄게 아프고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해봤다. 쇼핑백과 비닐에 뭐가 들었는지? 자신의 소품을 보여주기 싫어하는지 "아이고, 뭐 할라꼬? 남의 물건을 볼라고 그라노?"라며 기자를 다소 경계의 눈빛으로 봤다. 더 이상은 무례인 것 같았다. 언뜻 보니 쇼핑백에는 바닥에 까는 천과 이상하게도 스크랩 북이 하나 보였으며, 비닐 주머니 안에는 자신의 식사인지 비둘기의 먹이인지 모르는 음식물이 눈에 띄었다. 자꾸 할머니에게 질문을 하자 귀찮아졌는지 비둘기 할머니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기자 양반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 보소. 나 자꾸 취재하려고 하지 말고. 알려지면 뭐가 좋나? 날씨도 추운데 일찍 들어가야지. 나는 이곳에서 잘 살고 있고, 항상 여기 있으니까 안 도와줘도 돼. 오늘 고생했수다."
발길을 돌려야 할 시간이 왔다. 오후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간다고 인사를 하려 하니 그 추운 날씨에도 선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서 기자는 독백을 했다. "평화의 상징이 비둘기인데, 역설적으로 비둘기 할머니는 사는 게 전쟁이네요. 도저히 편안할 수 없는 곳이지만 편안히 주무세요."
돌아오는 발걸음이 지난 2년 동안 지켜보고 귀가할 때보다 더 무거웠다. 분명한 사실을 하나 알았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는 죽기 전까지 이 동대구역을 떠날 생각이 없고, 감히 누가 설득한다고 해도 강제로는 이 역사를 떠나게 하기 힘들 것이다.'
이 비둘기 할머니의 생활은 대충 이렇지만 다른 여성 노숙자들은 또 무슨 사연을 담고 있을까? 아득하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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