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동산의료원 혈관외과 조원현(59) 교수는 장기 이식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뇌사 장기 및 조직기증 활성화'를 목표로 내걸고 창립한 (사)생명잇기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대한이식학회 이사장 및 대한혈관외과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장기 이식과 관련해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2006년) 등 여러 책을 번역·발간했고, '신장이식'(2000년), '전인의학'(2003년) 등을 펴내기도 했다. 혈관외과 의사이자 장기 이식의 전도사로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혈관 수술의 선두주자
혈관외과는 사실 거의 모든 수술에 간여한다고 볼 수 있다. 심장과 뇌 혈관에 이상이 생기면 심장외과와 신경외과가 수술을 맡지만 그 외 나머지 혈관 관련 수술은 모두 혈관외과에서 한다. 장기 이식도 일부 병원에서 이식외과가 별도로 있지만 대개 혈관외과에서 맡고 있다. "신부전 환자의 경우 콩팥 기능이 떨어져서 투석을 해야 하는데 이때 혈관이 필요합니다. 혈관외과 일에서 50~60%를 차지하는 게 바로 투석환자를 위한 시술입니다." 최근엔 대동맥류나 하지동맥폐쇄증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다리로 가는 대동맥이 막히면 통증을 호소합니다. 이런 급성동맥폐쇄가 오면 대여섯 걸음도 못 뗍니다. 거의 대부분 동맥경화가 원인이 되는데 핏덩어리인 혈전이나 콜레스테롤 등이 쌓인 색전 등이 혈관을 막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엄청난 압력으로 혈액을 전달하는 동맥이 막히면 혈관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지름 3㎝ 안팎인 대동맥이 13㎝ 이상 커지기도 한다. 혈관 스스로 우회로를 만들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결국 수술로 막힌 혈관을 뚫어주어야 한다.
"대동맥이 갈라지는 곳에서 이런 현상이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장기로 가는 동맥이 막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장에 가는 혈관이 막히면 장이 운동을 못합니다. 통증이 심해지죠. 협심증과 비슷한 증상이어서 '장협심증'이라고 부릅니다."
대동맥류나 하지동맥폐쇄로 찾아오는 환자만 하루 평균 10명꼴. 모두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초기엔 약물과 운동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쓴다. 하지만 심한 경우엔 스텐트를 삽입해 인위적으로 혈관을 넓혀줘야 한다. 피가 통하지 않아 다리가 썩어들어갈 수도 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혈관 수술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다리를 잘라내는 일까지 생길 수 있다.
"혈관외과에 찾아오는 환자에게 '다리를 끊을래요, 담배를 끊을래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혈관 질환의 원인 중 흡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손발 끝이 썩어들어가는 버거씨병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 교수는 혈압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으로 ▷동맥경화 ▷흡연 ▷당뇨 ▷고지혈증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는 한데 붙어다니는 셈이라고 했다.
◆지역 장기 이식의 1세대
장기 이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혈관 연결이다. 이 때문에 혈관 수술과 면역을 함께 공부한 의사가 이식을 한다. 조 교수는 1982년 동산의료원에서 첫 신장 이식에 성공한 뒤 지금까지 880례에 이르는 신장이식 수술을 했다. 1994년엔 뇌사자의 간을 이식하는 수술에도 성공했다. 그는 원래부터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장기 이식에 대한 관심이 컸다.
"전공의 3년차이던 1978년에 개의 신장 이식에 성공했고, 1992년 미국 연수를 다녀온 뒤에 돼지 간 이식도 해 봤습니다." 그는 1986년 일본 도쿄대를 시작으로 미국 피츠버그대와 듀크대에서 장기 이식을 배웠다.
"우리나라의 장기 이식은 세계적 수준입니다. 생존율은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일 핏줄에 가깝다 보니 아무래도 조직이나 항원 검사에서 적합성이 높은 셈이죠. 이런 이유와 함께 법적인 한계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선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하는 수술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생체, 즉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경우가 80%에 이를 만큼 많습니다."
생체 이식의 80%는 신장이 차지한다. 나머지는 간 부분 이식이다. 조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나라의 간 생체이식은 기형적으로 많다. 특히 동북아지역 국가들이 그렇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뇌사자 장기 기증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것. "외국에서 '무모한 수술'이라고 말할 정도이지만 실제 간 이식의 80%는 생체 부분이식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간은 워낙 재생능력이 뛰어나서 3, 4주 만에 정상 크기로 회복됩니다. 기증 장기가 턱없이 모자라는 현실에서 그나마 대안인 셈입니다."
◆지역 혈관외과 인프라 탄탄
"우리나라는 뇌사 판정이 너무 까다롭습니다. 의사에 대한 불신 탓이겠죠. 그나마 최근에 관련 법이 개정돼 뇌사 의심환자가 발생하면 담당 의사가 병원장에게 '통보'하게 돼 있습니다. 국내 뇌사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생긴 셈이죠. 그렇다고 해도 이식이 가능한 경우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 교수는 뇌사와 식물인간 상태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 오히려 불안감을 야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가끔 언론에서 어떤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가 몇 년 만에 깨어났다'는 식의 보도를 접합니다.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뇌사는 뇌 전체의 죽음입니다. 자발적 호흡이 가능한 식물인간 상태와는 다릅니다." 이는 뇌사 후 장기 기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서 설문조사를 해보면 70~80%가 기증이 필요하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하겠느냐는 물음에는 여전히 주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식 대기 중에 숨지는 사람은 한 해 평균 300~400명에 이른다.
이식 대기자 명단에 등록도 못하고 숨을 거두는 사람은 훨씬 많다. 그나마 신장, 간은 이식을 기다릴 시간이 있지만 심장, 폐는 그렇지 못하다. 서울에서 관련 활동이 많다 보니 일주일에 많게는 나흘씩 KTX를 타고 상경하기도 했다. 진료와 강의를 중단할 수 없으니 저녁에 올라가 밤늦게 또는 새벽에 내려온다. "올해는 얼추 70~80차례 서울로 갔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조 교수는 오늘 저녁에도 서울에 가야 한다며 웃어보였다. "그마나 지역에선 혈관외과의 인프라가 워낙 탄탄하게 구축돼 있다 보니 환자 유출이 거의 없습니다. 의료의 질이나 양에서 서울에 뒤지지 않습니다."
김수용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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