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26일, 이승만(李承萬) 대통령 하야 이후 불어 닥친 혁명적 분위기는 박정희 소장을 격동시켰다.
거기다 3'15 부정선거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그와 함께 군 내부에서도 청년 장교들이 중심이 되어 혁신을 주장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혁명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2군 부사령관은 1개 소대의 병력도 동원할 수 없는 자리였다. 박정희가 직책과 직권에 의존하여 쿠데타를 계획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를 그 자리로 보내는 것만으로도 후환을 제거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국가 개조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인격을 바탕으로 하여 인맥을 구축한 것이지, 직책에서 나오는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박정희에게 있어서 2군 부사령관이라는 한직은 오히려 혁명을 모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리였다.
그에게는 사람을 가려서 부릴 줄 아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혁명 모의에 가담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박정희 소장의 해박한 인물 지식에 놀랐다고 한다. 또한 주변에 다양한 인물들을 모아서 그들의 능력과 개성에 맞는 일을 맡길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박종홍 같은 철학자와 김정렴 같은 모범생, 이후락 같은 모사와 김형욱 같은 거친 인물을 상호 충돌없이 쓰고 부렸다. 그는 나라를 뒤집고 새로 세우는 일에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만 있어서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다.
그리고 전략과 정보에 밝았다. 군사혁명을 계획하는 데 있어서도 그 같은 작전의 원리를 적용했다. 서울에 있는 정권의 사령탑을 기습하여 그 기능을 일거에 마비시키는 집중의 원칙이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장면 총리의 체포와 방송국 및 육군본부의 점령이 쿠데타 작전의 핵심이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소장은 마침내 한강 다리를 건넜다.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체를 숙이지도 않고 꼿꼿하게 걸어갔다. 소총을 든 이석제 중령이 뒤따랐다. 총알은 고개 숙여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사혁명 며칠 뒤인 6월 3일, '매일신문' 서울분실 정경원(鄭景元)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최초의 단독 인터뷰를 대구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한 것은 고향에 대한 배려로 보여진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옮겨 적는다.
- 오늘은 동향 선배를 대하는 마음에서 좀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청수원(淸水園) 아주머니의 안부도 전해 드리고요.
박정희: 청수원 아주머니한테는 신세도 많이 졌는데, 편지라도 한 장 해주어야겠지만….
- 박 장군이 군사혁명을 결심한 동기는?
박정희: 과거 25년간의 군인 생활을 통해서 나는 누구보다도 군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기성 정치인들에게 맡겨 놓으니 꼭 망할 것만 같았어요. 아, 그래 국가 민족이 망해 가는 판에 군이라고 정치에 불관여한다는 원칙만을 고집할 수 있겠소? 그래서 최후의 수단을 쓴 것뿐입니다.
- 자유당 정권하에서도 군사혁명의 기운이 있었다는데, 이번 5'16 혁명의 직접적인 동기는?
박정희: 하기야 이승만 정권 때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흥분한 일부 영관급 장교단이 들고 나서려고 했는데, 아시다시피 4'19 혁명이 일어나 학생들에게 맡긴 셈이지요. 그건 그렇다 하고, 이번 군사혁명의 직접적인 동기야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장면 정권이 국민의 뜨거운 염원을 팽개치고, 무능과 부패로 일관해서 도저히 그들로서는 긴박한 위기를 타개할 힘이 없다고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 박 장군의 신조는?
박정희: 나는 군인이니까, 국가에 충실하게 봉사하겠다는 일념뿐이지요. 아무리 썩고 혼탁한 세상이지만 올바르게 살아보겠다는 신념은 굽히지 않았지요. (이하 줄임)
그 당시의 심경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짧은 글이 남아 있다. '영남에 솟은 영봉 금오산아 잘 있거라/ 삼차 걸쳐 성공 못한 흥국일념(興國一念) 박정희는/ 일편단심 굳은 결의 소원 성취 못하오면/ 쾌도할복(快刀割腹) 맹세하고 일거 귀향 못하리라.' 비행기 편으로 상경하던 중 금오산 상공을 지나면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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