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변신 프란츠 카프카 / 보물창고

다시, 프란츠 카프카를 읽다

한 번 읽은 작품이라도 다시 읽으면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작품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책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은밀한 즐거움이다. 이 겨울 카프카를 읽으며 새로운 모습의 그를 만난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알게 된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레고르는 처음에는 가족에게 동정의 대상이 되지만 차츰 귀찮은 존재가 되어가고, 마침내 그가 죽자 가족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들이를 간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기계로, 가족부양자로 살아가던 한 남자가 그 역할을 거부하자 가족이나 사회라는 이름의 공동체와 무관하게 되고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이야기이다. 시간이 흐르고 자신들 스스로 생계의 방도를 갖게 되자 점점 냉담해지는 가족의 모습이 공포스럽다.

『법 앞에서』라는 단편을 보자. 법 앞에 문지기가 서 있다. 이 문지기에게 한 시골 사람이 와서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문지기는 끝내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문지기를 제치고 들어가면 될 것 같지만 문지기는 자신이 가장 말단에 있는 문지기이며, 홀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그 앞에 문지기가 한 명씩 서 있다고 말한다. 갈수록 문지기의 힘은 세어져 첫 번째 문지기는 세 번째 문지기의 모습만 봐도 벌써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사내는 문지기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온갖 귀한 것들을 줘보기도 하고, 문지기의 옷깃에 있는 벼룩에게까지 도움을 청해 보지만 끝내 법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된다. 사내가 마지막으로 문지기에게 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이곳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느냐고 묻자, 문지기는 "여기서는 아무도 허락을 못 받아. 이 입구는 자네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거니까. 이제 난 가서 문을 닫아야겠어."라고 말한다. 불과 4쪽에 불과한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카프카는 법과 국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카프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심판』이라는 작품도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떠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체포되어 이유도 모른 채 처형당하는 요제프 K라는 사내의 이야기이다. 측량기사로 성에 들어가고자 하나 끝내 들어가지 못하는 K의 이야기인 『성』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카프카는 지금까지 '고독과 불안이라는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을 표현한 작가'라는 식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왔지만 누구보다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했으며, 작품 속에 그러한 의식을 표현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카프카가 한창 작품을 쓸 당시 유럽은 세계대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으며, 그는 유대인으로 체코의 프라하에서 살아가면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경계인으로서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독단적으로 가부장적 권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상처 받으며 자랐고, 어머니나 누이 등 다른 가족에게도 별다른 애착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우울한 성격에 신경증을 앓았을 것이라는 일반의 생각과 달리 카프카는 큰 키에 말끔한 미남자여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았으며, 여러 명의 여인들과 정열적인 연애를 하였다. 법률을 공부하고 재해보험관리협회에서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였지만 오후 2시에 업무가 끝나면 잠시 쉰 다음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미친 듯이 글쓰기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41살의 조금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프란츠 카프카는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카프카의 작품이 지닌 매력은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그 다의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쨌거나 카프카를 읽는 겨울밤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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