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남창 장의 아침밥

시골 오일장에서 장보기를 좋아한다. 그곳에는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들이 풍성하다. 채소는 물론 과일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곡물들도 넘쳐난다. 그뿐 아니다. 소머리곰탕과 장터국밥을 파는 가게 앞에 서면 양은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소 콧구멍 같은 김이 "빨리 한 그릇 자시게" 하며 식욕을 부추긴다.

#처음 본 바닷가 오일장 해물 천국

기역자 목판에 쭈그리고 앉아 국밥 안주로 막걸리 한 추발을 들이켜는 이 맛과 멋. 내 고향인 하양 장은 4일과 9일에 선다. 비교적 큰 재래시장이어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고향 생각이 나면 별 준비 없이 길을 나선다. 매운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한 철을 빼면 어느 계절에 가도 실망하고 돌아설 이유는 없다. 봄에는 채마밭에서 나온 푸성귀들이 무진장이고, 여름에는 과일과 민물고기들이, 그리고 가을에는 진귀한 곡식과 영근 열매들이 몸매자랑 색깔자랑 하느라 시장통이 온통 시글시글하다.

풍경 구경을 제대로 하려면 의상의 색깔도 맞춰 입는 게 옳다. 단풍철에는 노랗거나 붉은 색깔의 등산복이 어울리듯 가을철 시장 구경을 나설 때는 고만고만하게 때깔 나는 점퍼라도 걸치고 나서야 온갖 알곡과 익을 대로 익은 과일을 대하는 예의가 될 것 같다. 경치 좋은 산수간으로 들어가면 구경하는 이도 풍경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도시에 가보지 못했다. 바다 구경을 한 적도 없다. 그야말로 고향 동네에서 하늘만 쳐다본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만난 바닷가 오일장은 새로운 눈뜸이거나 하나의 경이였다. 그곳은 해물 천국이라 부를 정도로 바닷속을 육지의 장바닥에 펼쳐 놓은 것 같았다.

그곳에는 정말 없는 것이 없었다. 고무다라이 속에서 펄펄 뛰는 회감 생선을 비롯하여 입맛 돋우는 젓갈, 개펄에서 나온 조개와 낙지 그리고 파래와 톳 등 이름조차 별난 해초들. 어느 것 하나 입에 군침이 돌지 않는 게 없었다.

몇 년 전부터 본격적인 갯가 여행을 시작하면서 완도 입구에 있는 남창 장을 만난 것은 어쩌면 축복이었다. 우리 천산(千山)대학 회원들과 함께 해남 미황사 뒷산인 달마산에 올랐다가 바닷가 인근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아침 부근의 식당을 물색해 보니 갯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그럴 만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 "해변도로를 타고 올라가자"는 요청에 따라 무작정 달리다 보니 사람들로 웅성거리는 재래시장을 만난 것이다.

#밥값 3천원에 푸짐한 시골 인심

남창 장. 2일과 7일에 서는 장으로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내용은 알찬 그런 시장이었다. 장 구경을 한답시고 우르르 내렸더니 예기치 않았던 장소에 우리가 찾던 밥집이 하얀 포장을 두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생선조림이 가장 큰 양재기에 담겨 있었고 파래와 톳 무침 그리고 게 볶음과 갓김치, 해풍 맞은 시금치나물과 조개젓 그리고 바닷물 속에 넣으면 금방이라도 헤엄쳐 갈 것 같은 눈깔 반들반들한 멸치젓이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이윽고 바다의 푸른 색깔보다 훨씬 더 푸른 미역국과 함께 보리쌀이 알맞게 섞인 밥이 머슴밥 크기로 담겨 나왔다. "덜어내고 반만 주세요." "그냥 잡숴요. 먹다가 한 술 더 달라지 말고." 시골 인심은 이렇게 푸짐하다. 실컷 먹고 누룽지 숭늉까지 먹었는데 밥값은 일인분에 삼천원이다.

회원들은 숟가락을 놓자마자 장바닥으로 몰려나가 농어, 우럭 등 말린 생선과 건어물들을 샀고 어떤 여성 회원은 곡식이 싸다며 종류별로 담아 넣었다. 땅끝 영전리 마을에서 왔다는 할머니에게서 다라이 속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낙지 여남은 마리를 단돈 이만원에 챙겨 넣었다. 이만하면 횡재나 다름없다. 남창 장은 한참 동안 눈에 밟힐 것 같았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