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소와 구제역

소는 기원전 4500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사육됐다는 기록이 있다.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의 시대 구분법에 따르면 신석기시대 말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오는 시기다. 대개 인간이 경작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하나의 필요 도구로서, 혹은 중요한 고기 공급원 역할을 맡았다고 할 수 있다.

신화에 나타나는 소에 대한 시각은 동서양이 조금 다르다. 동양의 삼황오제 중 삼황의 신농씨(神農氏)가 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단군신화에서 웅(熊)씨 족과 호(虎)씨 족이 곰과 호랑이로 전하는 것처럼 신농씨도 우(牛)씨 족으로 보는 것이 옳겠지만 동양에서는 그만큼 소에 대한 대우가 남달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농씨는 우리나라에서 농사의 신으로 숭배받았고, 의약의 신이기도 하다. 반면 이와 비슷한 소머리 형상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나타난다. 미노스 섬의 미궁에서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다 테세우스에게 살해되는 그 괴물이다.

힌두교는 소를 신성시하고, 도선(道禪) 쪽에서는 소가 곧 도(道)에 비유된다. 도교에서 구도(求道)의 전범으로 자주 활용되는 팔우도나 십우도에 나타나는 소는 곧 자신의 본성이자 깨달음의 경지인 도를 뜻한다. 불교와 도교를 절묘하게 섞어 구도 과정을 그린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주인공은 아기 스님과 소였다. 또 장난과 고마움을 섞어 우공(牛公)이라고 불러도 견공(犬公)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소가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임은 틀림없다.

구제역으로 소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살처분이라는 끔찍한 단어가 전국을 휩쓰는 가운데 한 축산농의 아들이 살처분 과정을 기록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담당 공무원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어머니께 살처분 협조를 부탁하면서 같이 울고, 가족들은 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최고급 사료를 먹였다고 했다. 안락사를 위해 송아지에게 독약이 든 바늘을 찌른 여직원은 울면서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며 구토를 했다 한다.

이 모습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들이 살처분될지는 예측하기도 힘들다. 정부는 사태가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막는 것은 물론, 축산농에 대한 충분한 보상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영문도 모르고 떼죽음을 당하는 소에 대한 진혼곡(鎭魂曲)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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