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을 알자'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인간을 괴롭히고 생명을 앗아가는 수많은 질병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로 엄청난 질병 정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하지만 아프기 전에 미리 막을 수 없을까, 질환을 정확히 알고 올바른 치료를 받을 수 없을까, 질병 치료의 첨단은 어디까지 와 있나를 알아보기 위해 이번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첫 질병으로 뇌졸중과 심근경색을 중심으로 한 심'뇌혈관 질환을 다룹니다. 단일 질환으로 사망률 1위인 뇌혈관 질환을 비롯해 심장질환 등에 대해 위험성과 첨단 수술, 예방 등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내용을 담을 예정입니다.
한가로운 휴일 오후를 보내던 50대 회사원 이민우(가명) 씨.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지만 평소 별다른 건강 문제는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휴일이 악몽처럼 변한 것은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왼쪽 전신이 마비됐다.
경북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것은 마비가 시작된 뒤 한 시간이 지나서. 응급 의료진은 혈전(피가 굳은 덩어리)이 뇌동맥을 막아버린 뇌경색임을 직감했고, 곧바로 CT 혈관촬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뇌 바닥에서 가지를 치는 뇌동맥 일부가 꽉 막혀 피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카테터 안통해…'눈썹 절개' 응급수술
가만두면 피 공급이 막힌 뇌 조직은 급격히 죽고 만다. 1분에 180만 개의 신경세포가 죽는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발병 후 2시간이 지난 상황. 의료진은 먼저 정맥주사를 통해 혈전용해제를 투여했다. 아울러 사타구니에 있는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1m 길이의 부드럽고 가는 관)를 집어넣어 뇌혈관으로 진입시켰다. 카테터를 활용해 혈전을 빼낼 수 있는 기구가 2005년 무렵부터 세계적으로 공인됐고, 최근엔 막힌 혈관의 개통률이 80~90%에 이르고 있다. 시술이 시작된 뒤 한 시간이 다시 흘렀다. 웬만하면 혈전 덩어리가 줄줄이 뽑혀 나오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뇌동맥이 가지를 치는 부위에 달라붙은 혈전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카테터를 이용한 혈전제거는 실패했다. 발병 후 4시간이 넘게 흘렀다. 피가 돌지 않는 일부 뇌 부위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의료진은 수술을 결정했다. 곧바로 두개골을 절개하는 수술이 시작됐다.
기존 수술과는 다른 방법이 적용됐다. 머리가 아닌 눈썹을 일부 절개한 뒤 지름 2㎝ 크기로 두개골을 잘라냈다. 이곳을 통과해 뇌막을 열면 뇌동맥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뇌 아래쪽에 곧바로 도달할 수 있다. 이미 혈관촬영을 통해 정확한 혈전 위치와 크기를 파악한 상태. 수술진은 막힌 혈관을 세로로 자른 뒤 시커먼 혈전 덩어리들을 꺼냈다. 붉은 피가 돌기 시작했다.
◆치료는 시간과의 싸움
마비가 시작된 뒤 6시간가량 흘러서야 비로소 수술은 끝났다. 혈관촬영 결과 꽉 막혀 있던 핏줄이 잔털처럼 많은 미세혈관들로 싱싱한 피를 공급하고 있었다. 입원 일주일 만에 이 씨는 다시 혼자 걸어다닐 수 있게 됐다. 다행히 운동, 언어, 감각 등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손상을 입지 않았다. 카테터를 이용한 혈전제거가 실패한 뒤 곧바로 이어진 눈썹 절개를 이용한 뇌수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수술은 신경외과 분야 최고 권위지인 뉴로서저리(Neurosurgery)에도 실렸다.
혈관 수술의 대상이 되는 뇌혈관 질환은 크게 뇌동맥이 터지는 '뇌출혈'과 뇌동맥이 막히는 '뇌경색'이 있다. 뇌출혈은 대부분 뇌동맥의 연약 부위가 혈관 내 압력을 이기지 못해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뇌동맥류'를 형성한 뒤 터지는 것이다. 뇌경색은 주로 동맥경화 때문에 뇌동맥 벽이 단단하게 두꺼워지고 안쪽으로 좁아져 서서히 막히거나, 심장이나 혈관 내에 있던 혈전이 갑자기 혈관을 막아서 발생한다. 뇌졸중(腦卒中)은 이런 원인들로 갑작스레 생긴 장애가 상당기간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40년간 숨 가쁘게 발전을 거듭해 온 의학의 정점에 뇌수술, 특히 뇌혈관 수술이 자리하고 있다. 의학의 거의 모든 첨단기술은 뇌혈관 수술 분야에 적용되는 셈이다. 뇌동맥은 뇌 바닥에서 4, 5㎜의 굵기로 시작해 점점 가늘게 가지를 치며 뇌 표면을 따라 흩어진다. 결국엔 마치 인삼 잔뿌리처럼 0.1㎜ 이하의 가는 혈관들이 뇌 속을 파고든다. 뇌 속으로 들어간 미세 혈관들을 제외하고 뇌 바닥과 표면에 있는 1~5㎜ 굵기의 혈관에 생긴 질환들은 주위 뇌조직 손상 없이 직접 수술이 가능해졌다.
◆뇌졸중은 '떨어지는 유리잔'
뇌 수술은 안쪽 깊은 부위를 30배나 확대하는 수술현미경을 이용해 미세 수술로 진행된다. 파열된 뇌동맥류나 손상된 뇌동맥은 티타늄 클립으로 막거나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로 봉합해 치료한다. 지름 1㎜밖에 안 되는 혈관을 미세 수술실로 열 바늘 이상 꿰맬 정도로 정교한 수술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수술 및 시술 기법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뇌혈관 질환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사망원인통계'에서 뇌혈관 질환은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 52명으로, 단일 질환 중 1위를 차지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7천100여 명보다 3.6배나 많은 2만5천800여 명이 뇌혈관 질환으로 숨졌다. 통계상 암이 140.5명으로 1위였지만 10여 개 암을 모두 합친 수치였다.
앞서 이민우 씨의 수술 성공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1990년대에 처음 개발된 '눈썹절개를 이용한 뇌수술'은 다른 수술에 비해 시간이 훨씬 짧지만 고난도 수술에 속한다. 상용화된 병원은 전세계적으로 대학병원 중 10%가 채 안 된다. 국내에서도 축적된 수술 사례를 가진 곳은 서너 곳에 불과하다.
당시 수술을 집도했던 경북대병원 신경외과 박재찬 교수는 "혈관 수술이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손상된 뇌 자체를 원상 회복시킬 수는 없다"며 "뇌출혈로 인한 뇌 손상은 마치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지듯 출혈과 동시에 발생한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 제공=대구경북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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