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훈(가명'44) 씨는 봄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가 66세 노모와 함께 사는 월세 20만원짜리 2층 집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이다. 분홍색 보자기로 현관문을 감싸고, 바람을 막기 위해 현관문 빈틈에 스티로폼을 덧대도 3월이 너무 춥다. 차가운 공기는 오 씨의 집안에만 감도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숨통을 조여오는 '골수이형성증후군'은 오 씨의 몸과 마음 모두를 시리게 하고 있다.
◆병, 가난을 몰고 오다
이달 28일 오후 오 씨 집으로 가는 길은 적막했다. 허리 굽은 노인들이 유모차에 의지해 조용히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다. 회색빛 슬레이트 지붕과 검은 봉지에 담겨 있는 연탄재들은 이 지역이 재개발 대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은 4년 전이다. 2008년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은 뒤 집세가 싼 곳을 찾아 이곳으로 옮겨왔다. 백혈병의 일종인 이 병은 골수의 증식과 구성 세포에 문제가 생긴 혈액 질환으로 이후에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병을 앓기 전만 해도 오 씨는 스스로 밥벌이를 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15년간 애견 사업을 하며 사장님 소리도 들었다. 150마리가 넘는 개를 키우기 위해 대구 외각에 터를 빌렸고, 애견숍을 함께 운영하며 중국 심양에 수출도 했다. 애견 사업이 큰 돈이 되지는 않았다. 떠돌이 개와 아픈 개들을 매몰차게 내쫓지 않고 가슴으로 품었기 때문이었다. "내 자식 같은데 어떻게 버리겠어요. 아픈 개는 집 안으로 데려와 보살폈죠."
사업에 열중하다가 결국 혼기도 놓쳤다. 그래도 오 씨는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어머니(66)를 모실 능력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자신의 인생에 만족했다. 하지만 병에 걸린 뒤 그의 삶에 어둠이 덮쳤다. 2008년 감기가 한 달간 떨어지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았고 병명만큼 낯선 삶이 그에게 찾아왔다.
◆잇따라 찾아온 슬픔
지인에게 자식같이 키웠던 애견들을 헐값에 넘기고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40년 동안 치열하게 살았지만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생명은 경제력과 맞닿아 있었다. 적어도 오 씨에게는 그랬다. 각종 검사비와 입원비, 약값이 부담돼 한 달 이상 입원하지 못했다. 항암 치료를 하면서도 걱정됐던 것은 고통받는 몸보다 차곡차곡 쌓여갈 병원비였다.
몸이 아프면 가족에 의지하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이를 허락지 않았다. 과일가게에 시집간 여동생 문희(가명'43) 씨는 오 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남편을 잃었다. 췌장암으로 힘들어했던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남편을 잃은 뒤 삶의 이유를 상실한 여동생에게 "간호를 해달라"며 손을 내밀 염치가 그에게는 없었다. 남동생도 생활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불공장에 다니며 가족을 보살폈던 남동생 문호(가명'41) 씨는 실직과 동시에 부인과 이혼했다. 또 사위와 며느리를 동시에 잃은 어머니를 오히려 오 씨가 감싸야 할 형편이었다. 오 씨는 "장남인 내가 식구들을 품어줘도 모자랄 판에 가족을 잃고 힘겨워할 식구들에게 감히 도움을 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말끝을 흐렸다.
◆한 줄기 희망을 위해
그래도 식구들은 오 씨를 지원했다. 지난해 여동생과 남동생은 없는 형편에 150만원을 들여 골수 조직검사를 받았다. 오 씨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 씨의 골수와 50% 이상 일치하는 사람이 없어 꿈을 접어야 했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건강만 믿고 살았던 과거에 대한 후회, 건강과 함께 하나둘씩 사라져간 주변 친구들, 결혼을 포기하고 사업에 모든 것을 걸었던 자신의 외로운 인생.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 씨의 곁을 떠나자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밀려왔다. 병원비를 내기 위해 친척 카드를 빌려야 할 때면 삶의 끈을 놓아야겠다는 마음까지 먹게 됐다.
짙은 어둠 속에도 한줄기 빛은 있었다. 지난 1월 입원실에 담당 의사가 찾아왔다. "축하합니다. 선생님과 골수가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았습니다." 나락에 떨어져 있는 그에게 찾아온 희망의 메시지였다. 문제는 돈이다. 기증자 병원비와 이식 비용은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최소 700만원이 들고, 이후 치료비까지 감당하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생계비 38만원을 한푼도 쓰지 않고 1년을 모아도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다. 인터뷰 내내 오 씨는 이 말을 반복했다. "병에 걸려 죽는 게 아니라 돈이 걸려 죽는 겁니다."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희망이 절망으로 바뀔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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