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직토크](20)사랑과 평화, 이장희(하)

한국판 슈퍼그룹 사랑과 평화는 이장희의 지휘 아래 탄생한다. 이장희의 작사, 작곡과 사랑과 평화 멤버들의 연주력은 당대 한국대중음악계를 대표했다. 이들의 만남은 1974년, 이장희가 진행하던 DBS라디오 프로그램 '0시의 다이얼'을 통해서다. 이장희는 통기타 음악과는 다른 분위기의 고정 출연자를 원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영 에이스'라는 그룹에 탁월한 기타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최이철의 그룹을 고정 호스트 밴드로 초대하게 된다. 이렇게 만난 둘은 아예 새로운 밴드를 만들게 된다. 서로의 음악에 반한 두 사람은 1975년, '북극성'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이장희의 백밴드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그룹을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장희는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게 된다. 일절 활동이 금지된 이장희는 표면적으로 의류매장을 운영하면서 소일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시기 이장희는 '락컴퍼니'라는 기획사를 차리고 '랩스튜디오'라는 녹음실도 만든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만들었지만 그 안에는 어느 한곳 이장희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장희는 기본적으로 포크 가수였다. 하지만 이장희의 음악에서는 당대의 포크 가수들이 보여주던 이미지와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음악적으로 구분하자면 이장희는 포크록의 성향이 강한 가수였다. 자신의 활동이 제약을 받으면서 차린 기획사와 스튜디오에 포크록 계열의 가수들이 모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른바 이장희사단의 탄생이다.

이장희사단은 1978년부터 80년 사이, 한국대중음악계의 보석같은 걸작들을 양산해 낸다. 사랑과 평화의 데뷔 앨범을 시작으로 최성원(들국화의 멤버였던), 이영재, 이승희 같은 포크계열의 가수들의 앨범, 김현식의 데뷔앨범, 김태화의 솔로데뷔앨범 같은 음반이 이장희사단에서 만들어 진다. 이들 앨범의 특징은 대중적인 취향과 음악적인 면 모두를 만족시켜 준다는 점이다. 레코딩 기술이 온전치 않던 시절이었지만 이들 앨범은 당시의 수준을 넘는 것들이었다. 여기에도 이장희의 고집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다.

광화문에 있던 랩스튜디오는 표면적으로 녹음실이었지만 오히려 연습실에 가까웠다. 이장희사단 소속 가수들이나 연주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음악인들이 이곳에서 실험과 고민을 거듭하고 이후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 이곳은 1980년, 2차 대마초 파동 이후 이장희의 도미로 와해되지만 이후 80년대 한국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발상지가 된다.

이장희사단은 음악인의 조우를 넘어서 한국대중음악의 새로운 코드를 만들었다. 이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지만 않았어도 이후 한국대중음악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스튜디오와 라이브 무대, 라디오를 음악인이 있어야 할 곳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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