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은 전진기지를, 영남권은 병참기지를 맡아야 한다."
TK 출신(영양)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 2006년 16대 총선 당선자 연찬회에서 주장한 요지다. 대선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중심으로 당을 이끌어가야 한다면서 영남권 인사들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의 당의 전면에 나서지 말고 뒤로 빠지라는 뜻이었다. 이는 지난 대선때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을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대선후보로 만드는 주요 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 장관이 수도권 중심 사고에 젖어 있으며 그의 머리 속에 대구경북은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선거하기 편한 지역'으로 각인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정치사에서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은 보수세력의 총본산으로 인식되면서도 평가절하돼 온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70%를 웃도는 '몰표'를 던지는 투표행태가 고착화됨에 따라 아예 야당에서는 대구경북에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결정하기 전 '신공항을 백지화할 경우 민란이 일어날 정도로 민심이 좋지 않다'는 지역여론을 전해들은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렇다면 대구경북표가 (다음 대선에서)어디로 가겠느냐. 한나라당 외의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시적으로 반발하겠지만 대선 때가 되면 또 다시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에 따라 몰표를 줄 것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대구경북은 여권에서 보면 '떡밥을 던져주지 않아도 되는 잡은 고기'라는 표현이었다.
그의 상식적인 전망에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몰표를 준 이래로 대구경북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 이명박 대통령 등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대선후보에게 70~80% 대의 지지를 보내온 것이 사실이다. 부산 출신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실망한 다음 대선 때도 대구경북은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이회창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보수세력의 총본산이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실상은 '병참기지'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구경북 정치세력의 현재 위상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에는 대구경북에 기반을 둔 정치인이 진입하지 못하고 있고 국회의장과 부의장 및 상임위원장 등 국회직에서도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전략적인 투표행태에 대한 다른 지역의 왜곡된 인식이 빚어 낸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그래서 대선 때마다 돋보이는 충청권의 전략적 선택을 이제라도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대전'충남'충북 등 충청권은 대선 때마다 당선되는 후보를 선택하는 전형적인 전략적 투표 행태를 보였다. 14대 대선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충청권에서 36.2%의 지지를 받아 27.3% 득표에 그친 당시 김대중 전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충청권이 수도권에 버금가는 산업기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15대,16대 대선때는 충청 표심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각각 40.3%와 51.8%를 얻어, 전국평균 득표율보다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이전' 공약을 내세워 충청권에서 과반이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TK출신이면서도 수도권에서 야당중진으로 성장한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대구경북 사회의 장점이라고 얘기되던 신의와 뚝심이 인간사회의 지향 가치인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현대 정치는 그러나 이해관계와 갈등의 조정이다. 좀 더 현명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에서는 의리와 뚝심이 통하지 않고 정치는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도 "'병참기지'라는 모욕적인 평가에도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주소"라며 "한 쪽으로 쏠린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여러 대안 중에서 전략적 사고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의 언급은 당장 시장, 지사 등 대구경북 자치단체장들이 대구경북의 미래를 제대로 그리는 전략부터 짜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는 당위론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손영준 국민대 교수는 "당장 한나라당의 대안으로 무엇을 찾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러 가지 맥락에서 봤을 때 너무 이른 감이 있다"면서도 "대선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다양한 대안을 찾아보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명수기자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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